안동 김씨/직계조상님

(12) 석실서원(石室書院), 진경(眞景) 문화와 북학사상(北學思想)의 산실

추읍산 2009. 6. 17. 07:26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석실마을에 있었던 이곳은 1656년(효종 7) 병자호란 때 대표적인 척화신인 김상용, 김상헌의 도덕과 충절을 기리고자 건립되고 1663년(현종 4) 석실사(石室祠)라는 편액을 하사받고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습니다.

 

1697년(숙종 23)에 김수항, 민정중(閔鼎重 1628~ 1692),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이 배향되고 이후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원행(金元行 1702~ 1772), 김이안, 김조순이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17~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의 학문연구 중심지이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이곳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여 방치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웃인 미음 나루터는 당시 삼주삼산각(三洲三山閣)이 있었던 곳으로 농암 김창협과 그의 대를 이은 김원행, 김이안 등이 사시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숙종 대왕(肅宗大王) 시기: 당시 상당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농암 김창협이 강학을 주도하였으며 삼연 김창흡도 한때 일부교육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문하에는 이재(李縡 1680~ 1746), 어유봉(魚有鳳 1672~ 1744) 등 수 많은 인재가 교육을 받았으며 진경 시문학의 이병연(李秉淵 1671~ 1751), 인물 풍속화의 대가 조영석(趙榮祏 1686~ 1761), 진경 산수화의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 1759)은 그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의 석실서원도와 삼주삼산각은 당시 이 두 곳의 건물군을 고증하는 유일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영조 대왕(英祖大王) 시기: 농암 김창협의 손자인김원행[金元行, 몽와 김창집의 셋째 손자로 종숙인 김숭겸(金崇謙)에게 입후 됩니다. 필자의 8대조(金達行)의 바로 위 형님이기도 합니다.] 이 당시 교육을 주도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 경기지역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인재가 구름같이 모여들어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서원 학습규정을 새롭게 마련하고 학생들이 숙식할 건물을 지었으며 학생들에게 경세학(經世學)에도 관심을 둘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문하에는 박윤원(朴胤源 1734~ 1799), 홍대용(洪大容 1731~ 1783), 황윤석(黃胤錫 1729~ 1791)같은 학자들이 교육을 받고 청의 발달한 문물을 도입하자는 북학론(北學論)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김원행은 영조 대왕의 출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오직 후진양성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원행의 아들 김이안[金履安 1722~ 1791 |자: 원례(元禮) 호: 삼산재(三山齋)|시호: 문헌(文獻)] 과 그 후계자들에 의하여 교육활동은 1868년 서원 철폐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14)석실서원 동영상이 있습니다. 출처: 아래http://blog.naver.com/777kyb/1000396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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