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를 지나가며 느낀 감회를 공손히 짓다.
遲遲昔日此臺前(지난날 이 대 앞에서 더디고 더디었든 것은)
宸慕3)凝鑾4)望寢園5)(선왕이 그리워 수레 멈춰 침원을 바라보고자 함인데)
追本有辭情極地(근본을 추모해 기리니 정은 땅의 이치를 다했고)
爲君無樂慟窮天(군을 위한 즐거움은 없었으니 애통함이 하늘에 다했네)
臣民巨割6)庚申夏7)(신하와 백성이 경신년 여름 국상을 당하시고)
城闕空悲甲子年8)(궁궐에는 갑자년이 부질없는 슬픔이 있었는데)
子弟新豐9)今已老(자제들이 신풍에서 지금은 이미 늙었기에)
歌風10)一曲淚潛然11)(大風 한 곡조를 노래하며 조용히 눈물을 짓네)
1) 遲遲臺 :지지대는 의왕시와 수원시 경계에 있는 고개로 유래는 정조께서 재위기간동안 매년 사도세자의 묘소인 헌륭원에 거동하였다. 배향을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서 멀리서나마 헌륭원 쪽으로 뒤 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이때 정조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遲遲臺라 부르게 되었다.
2) 김유근(金逌根) 1785(정조 9)∼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선(景先), 호는 황산(黃山).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조순(祖淳)의 아들이다. 1810년(순조 10) 식년문과 부사과(副司果)에 응시하여 급제한 뒤 곧 홍문록회권(弘文錄會圈)에서 5점을 얻고 사서를 거쳐 검상이 되었다. 1817년에는 이조참의가 되고, 2년 뒤에는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한 뒤 곧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1822년 이조참판에 오르고, 3년 뒤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182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는 도중 면회를 거절당한 전직관리에 의해 가족 5명이 살상되는 흉변을 당하여 부임하지 않고, 돌아와서는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곧이어 이조판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군사의 실권을 잡아 판돈녕부사에 올랐으나, 중풍에 걸려 4년간 말을 못하는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시와 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갈필(渴筆)을 사용하여 지극히 간일(簡逸)하고 문기(文氣)넘치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잘 그렸다. 유작으로 개인 소장의 〈오주고목도 五株枯木圖〉와 〈괴석도 怪石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연산도 硏山圖〉 등이 있다.
3) 宸慕 :선왕의 사모(정조가 부친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것)
4) 鑾(천자가 타는 수레, 란)
5) 寢園 :임금의 무덤(사도세자의 무덤)
6) 巨割 :말의 주둥이가 흰 것을 거할이라 하는데 國喪을 가리키는 것 같다.
7) 庚申夏 :정조 24년 음력 6월 28에 승하하시었다.
8) 정조는 1804년, 갑자년이 되면 퇴위하고 수원으로 낙향하려 한다는 마음을 여러 사람에게 말했던 듯하다. 갑자년이라는 육십갑자의 출발점에다 부모의 칠순을 맞이한다는 공통점,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세자의 나이가 15세가 된다는 우연의 일치가 정조로 하여금 퇴위를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퇴위한 다음에는 상왕으로서 정사를 보필하면서 부모에게 못다한 효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자신이 고향으로 생각하는 수원에서 나름대로의 생을 정리하는 한편, 국가 운영의 밑거름이 되는 학문 연구 등의 뒷받침을 계획했을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그렇게 되면 수원은 조선 제이의 도시가 되면서 학문 연구의 장으로 각광 받았을 것이고, 조선 후기 실학의 실험장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1800)은 수원의 몰락을 동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9) 新豊 :신풍는 정조가 세운 수원 화성이다. 풍(豐)은 원래 한 고조의 고향으로, 한(漢)의 고조가 천하를 통일한 후 성과 거리의 모양을 풍(豐) 땅과 같이 만들어 놓고 풍 땅의 백성을 이곳에 이주시키고 신풍(新豐)이라 하였다.
10) 歌風: 한 고조가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를 격파하고 돌아올 때 고향인 패(沛)에 들러 잔치를 베풀면서 불렀던 노래인데, 그 가사 가운데에 “위엄을 세상에 떨치고 고향에 돌아왔도다.[威加海內兮 歸故鄕]”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史記 高祖紀》
11) 潛然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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