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스크랩] 김 황산 유근 에게 주다[與金黃山 逌根][3]

추읍산 2009. 8. 5. 13:03
김 황산 유근 에게 주다[與金黃山 逌根][3]

그제 반차(班次 조정 반열의 차서)에서 바라보아도 아니 보였으니 혹시 눈에 티가 끼어서였는지 이제까지 저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동풍이 또다시 일어나니 이야말로 작은 근심이 아니온데, 엎드려 살피지 못한 며칠 사이 균체후 어떠하오신지 사모하는 마음 간절하오며, 신도(愼度)는 곧 평복되어 다시 다른 증세가 없으십니까? 여러 가지로 염려되옵니다.
정희는 요사이 주려(周廬)에 입직하다가 또 기성(騎省)에 옮겼으니 고건편미(櫜鞬鞭弭)가 하나의 유쾌로움이 아닌 것은 아니나 다가올 직차(直次)의 노고는 어떻게 견뎌낼지 모르겠습니다. 노친은 엊그제 잠깐 북서(北墅)로 나가셔서 며칠 동안 서늘한 바람을 쐬실 생각이었는데, 일기가 이와 같으니 산루(山樓)는 도리어 너무 서늘할 염려가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마침 이 작은 책자 하나를 얻은바, 이는 바로 우홍로(禹鴻臚)왕어양(王漁洋)의 합벽(合璧)인 진적(眞跡)으로서 평소에 한번 보고 싶어도 못 보던 것인데, 이제야 비로소 손에 들어 왔으니 저도 몰래 신기(神奇)함을 외치곤 합니다. 이에 감히 받들어 올려 한번 보아 주시기를 청하오니 또한 이로부터 희환(喜歡)의 연이 되리라 상상하옵니다. 오늘은 노친을 뵈옵기 위해 아침에 나가게 되어 바쁨을 물리치고 잠깐 아뢰오며 미처 갖추지 못하옵니다.
우홍로는 귀장(貴莊)에도 일찍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본 것도 같고 안 본 것도 같으니 근일 들어 정신이 두루 온전하지 못하와 가련할 뿐입니다. 석서(石書 비석 글씨)는 과연 사용해도 잘못됨이 없을는지요. 연추(姸醜)에 있어 자신도 못 가지면서 서슴없이 함부로 올린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옵니다.

[주D-001]신도(愼度) : 병중에 있는 상대방을 말함.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子之所愼 齊戰疾"이라 하였음.
[주D-002]주려(周廬) : 궁중의 숙위(宿衛)하는 곳으로서 사방을 둘러 여사(廬舍)가 되었음.
[주D-003]기성(騎省) : 병조(兵曹)의 별칭.
[주D-004]고건편미(櫜鞬鞭弭) : 고건은 활과 화살의 투낭(套囊)이고, 편은 채찍, 미는 꾸미지 않은 활을 이름. 《좌전(左傳)》희공(僖公) 25년에 "左執鞭弭 右屬櫜鞬"이라 하였음.
[주D-005]우홍로(禹鴻臚) : 이름은 지정(之鼎)이고 청(淸) 강도인(江都人)으로 자는 상길(上吉), 호는 신재(愼齋)이다. 강희(康熙) 연간에 홍로시 서반(鴻臚寺序班)을 지냈다. 그림을 잘 그려 내정(內庭)에 공봉(供奉)하였는데 특히 사조(寫照)를 잘 하여 수미(秀媚)하고 고아(高雅)한 품이 당대에 제일이었음.
[주D-006]왕어양(王漁洋) : 왕사정(王士禎)을 말하는데 청(淸) 신성인(新城人)으로 자는 이상(貽上), 호는 완정(阮亭), 별호는 어양산인(漁洋山人)이다. 순치(順治) 때에 진사(進士)로 벼슬이 형부 상서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시로써 해내에 울려 사람들이 당대 정종(正宗)이라 칭하였음. 저술은《대경당집(帶經堂集)》·《지북우담집(池北偶談集)》 등 수십 종이 있음.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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