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스크랩] 내 동생 元根을 추모하며

추읍산 2009. 7. 21. 16:56

悼仲君 도 중군----------------------

                                         김 유근(金逌根)

                                                              (1785~1840)

                                                                    자는 경선(景先). 호는 황산(黃山)..

 

<--내 동생 元根을 추모하며-->

하늘 끝까지 바야흐로 슬픔 안았고

몸 절반 베어낸 슬픔 또 어찌하랴.

 

불행히도 집안 운세 막혀 버리니

골상을 징험할 길 온전히 없구나.

 

깊은 슬픔 마치 하루 같으며

커다란 이별 이미 삼년이어라.

 

꿈결에도 오히려 못 만나지만

유명은 달리해도 어찌 내버려 두랴.

 

 窮天方抱慟 割半又胡 천방포통 할반우호

 不幸門閭否 無徵骨相 불행문려비 무징골상

 深悲如一日 大訣已三 심비여일일 대결이삼

 夢寐猶難見 幽明豈棄몽매유난견 유명기기

                                           < 黃山 시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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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 이해와 분석>------------------------

仲君:  둘째 동생을 가리킴. 그냥 동생의 다른 말로는 卯君이라는 말도 있다.

       伯仲叔季-- 형제의 순서를 말할 때 차례대로 쓰는 말이다.

窮天: 하늘 끝 ‣ 割半: 반에 나누어 벰. 형제, 자매를 잃은 고통을 말할 때에 割半之痛(할반지통)이라는 말이 있다. 동생을 잃은 슬픔을 말한다.

門閭:마을 어귀의 문. 집안, 가문. ‣骨相:뼈대, 골격(骨格). 골격(骨格)에 나타난 인상(印象) ‣ 三年: 동생 죽은 지의 흘러간 세월. 동생 元根은 壬辰년 <순조 32년(1832 ) > 12 월 27 일 겨울에 작고함.‣幽明: 내세와 현세. 이승과 저승. 죽다에 대한 완곡한 표현. ‣棄捐: ①내어 버림. ②자기(自己)의 재물(財物)을 내어서 남을 도와 줌 .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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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의 포인트> ------------ -----------------

 

가문을 지켜가던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3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바로 한 살 터울의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가슴에 저미는 혈육을 잃은 참담함의 심정이 그려진 시이다. 1834 년< 순조 34 년>에 지은 시다.

 

하늘 끝까지 닿는 깊은 슬픔이요. 할반지통割半之痛의 통곡이다.

 

함께 시문을 화답하던 동지 같은 동생이었다. 불경 공부를 한다고 알려주었던 동생이다. 장남이었던 지은이는 백부 댁에 양자로 입후되었고, 자기를 대신하여 가문을 이끌어 주던 동생이었기에 늘 깊은 사랑과 보살핌을 가졌었다. 아버님께서도 늘 동생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셨다. 그러시던 아버님도 같은 해 봄에 세상을 떠나셨다. 인후(仁厚)하고 충근(忠勤)한 덕으로 늘 과묵하던 동생이었다. 세상 밖의 시끄러움이 있어도 燕坐超然不出門( 제비처럼 초연히 앉아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하던 동생이었다.

 

가문을 이어가려고 첫 부인이 21 세로 요절하자 두 번이나 장가를 갔던 동생이었다.

지은이에게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죽음이 늘 머릿속을 맴돌며 가슴 아파하였다. 이런 것들이 지은이에게는 육체적인 병을 들게 한 마음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깊은 이별의 시름. 한 핏줄로 태어난 운명의 끈이 이리도 질기다. 앉으나 서나 먼 저 세상을 떠난 동생을 추모하는 통곡의 서정이다.

 

                        하늘 맞닿은 슬픔에 내 몸 반 잃은 아픔

                        내 혈육은 멀리 있어 꿈속에도 안 보여

                       지새간 삼 년의 세월 저승에선 이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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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묘군(卯君)

상대방의 아우를 부르는 말이라고도 하며, 卯年에 출생한 사람(= 卯生)을 말한다.

간지(干支)에 묘(卯) 자가 들어간 해에 출생한 사람이란 뜻으로, 아우를 가리키는데,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아우인 소철(蘇轍)의 생일 축하시에 東坡持是壽卯君 <‘동파가 이것을 가지고 묘군에게 축수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어 아우의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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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대한 표현 ------------------------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는 말이 그 대상에 대해서 각기 다르다.

할반지통 割半之痛

형제 잃은 고통. 절반이 쪼개지는 고통 즉 몸의 절반을 베어 내는 아픔으로 형제를 잃은 고통을 말한다.

천붕지통天崩之痛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말함. 부모의 죽음에 쓰이는 말로 망극지통(罔極之痛) 즉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내지는 그지없는 슬픔을 뜻한다. 옛날에는 임금을 잃은 슬픔을 말할 때에 쓰였다.

붕성지통 (崩城之痛 )

하나의 성이 무너지는 고통이란 뜻으로 남편의 죽음을 표현할 때에 쓰인다.

고분지통( 叩盆之痛 )

동이를 두드린다는 고통으로 아내의 죽음을 말할 때에 쓰인다.

장자(莊子) 지락(至樂)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에서 유래하였다.

莊子(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惠子)가 조상(弔喪)을 갔더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鼓盆而歌> 장자의 기행(奇行)을 나무라니 장자는 다음과 같은 반박을 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출발점은 생명도 형체 (形體)도 기(氣)도 없는 무(無)의 세계이며, 죽음이란 본래 상태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라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으로 자식의 죽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참척(慘慽)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몹시 근심을 한다는 뜻으로 아들딸이 부모보다 손자가 조부모보다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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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元根(김 원근)-----------------< 족보기록 >

1786(정조 10)∼1832(순조 32)

자(字) 경미(景渼) 호(號) 취정(翠庭)

正祖 丙午12月 29日生 己巳 進士 丁亥 文科 吏叅 壬辰 12 月 27 日 卒 贈 吏判 <1786丙午-1832(壬辰) 47세>

○ 配贈貞夫人完山李氏丁未生丁卯 6月 6日卒 父 郡守贈參議憲成 祖 叅奉贈 正 英祖 曾祖 承旨 復祥 外祖 金秉烈 本慶州

<1787丁未 -1807丁卯 21세>

• 풍고께서 쓰신 貞夫人完山李氏의 제문에는 순조 7 년 6月 5日로 기록.

○ 后配贈貞夫人海平尹氏辛亥生丙戌正月8日卒 父 章烈 祖台東 曾祖 得謙

外祖 趙相協 本淳昌 墓 先兆左岡辛坐合窆

<1791辛亥-1826丙戌 36세>

○ 三配貞夫人全州李氏戊辰生戊午7月2日卒 父 監役贈叅判鼎商 祖 贈 承旨

世耈 曾祖 贈 正瑀 外祖 尹大成 本 坡平 墓 桂田先兆後麓壬坐

<1808戊辰-1858戊午 51세>

자제 계통은 다음 기회로 미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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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元根 조상님의 행력

                      1786(정조 10)∼1832(순조 32)

                       자(字) 경미(景渼) 호(號) 취정(翠庭)

                              判官公 文正公파

15세 淸陰 尙憲-16세 思晦 光燦- 17세 文谷 壽恒(3)-

18세 夢窩 昌集-19세 竹醉 濟謙 20세 脩甫 達行(4 )--

21세 時可 履中(2)-22세 楓皐 祖淳- 23 세 翠庭 元根 (2)

24세 伯寧 炳地-25세 玄巖 錫圭- 26세 皐雲 善鎭-27세 定遠 定漢-

28세 炯東( 신묘51 년 생 )

★顯年鎰求模然培銑源榮思埈善澤植煥喆

돌림자로 이어갈 것이다.

연대

행력

참고

1786 정조 10

12월, 차남으로 태어나다.

1785 장남 김유근 출생 1789 순원왕후 출생 1797 삼남 좌근 출생

1809 순조 9

진사進士

1800왕세자빈1802 왕비등극. 김조순 영돈녕부사 領敦寧府事

효명세자 출생

1820순조 20

2 월 재령 군수(載寧郡守)

1821 순조 21

5월 산릉도감 낭청(山陵都監郞廳判官)

김유근 弘文館副提學,

1826 순조 26

9월직부전시(直赴殿試)제술(製述)에서 수석

1827 조 27

친림문과(親臨文科)에 병과 급제

6 월 이조참의吏曹參議첨서 대점添書代點

1828 순조 28

8월.이조 참판吏曹參判,添書낙점

어머님인, 부부인 청송심씨가 운명

1831 순조 31

5월가의(嘉義)의 자급을 더함

11월 사헌부 대사헌 司憲府大司憲

1830 효명세자 운

1832 순조 32

11월 이조 참판吏曹參判

12월 27 일

4월 김조순 운명

1832 년 순조 32 년 4 월 3 일에는 아버님이 운명하셨고, 12 월 27 일에는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에 당한 큰 슬픔이었다.

아우의 죽음을 생각하는 지은이의 비통이 하늘 끝까지 닿았으리라.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비애에 깊이 빠졌으리라.

 

 

前參判金元根卒。 敎曰: “國舅喪事未幾, 此宰臣今又繼逝。 非但爲其家傷衋。

其人之仁厚忠勤, 誠難易得, 重可悼惜。 卒參判金元根家, 退件棺板一部輸送, 喪需, 亦令該曹, 從厚輸送。”

전 참판 김원근(金元根)이 졸하였다. 하교하기를,

국구(國舅)의 상사(喪事)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재신(宰臣)이 지금 또 서거하였다. 비단 그 집안을 위해서만 슬퍼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후(仁厚)하고 충근(忠勤)함은 참으로 쉽게 얻기 어려우니, 그래서 더욱 슬퍼하는 것이다. 작고한 참판 김원근의 집에 퇴맞은 관판(棺板) 한 벌을 실어 보내고, 상수(喪需)도 해조(該曹)로 하여금 되도록 후히 실어 보내게 하라.”하였다.< 조선왕조 실록 인용 >

국구(國舅)의 상사(喪事)------순조 32년(1832 임진 12년) 4월 3일(기묘)일에 영안 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의 운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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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으로 계신 <포상>이라는 선생님께서 다음처럼 풀이를  하였다.

 

悼仲君(둘째를 애도하며)
窮天方抱慟(품은 애통함이 하늘에 닿으나)
割半又胡然(혈육을 잃은 슬픔 어찌할거나)    
不幸門閭否(불행하게 집안이 곤궁에 빠져)
無徵骨相全(타고난 온전함을 징험치도 못했구나)
深悲如一日(깊은 비애가 한나절 같건만)
大訣已三年(사별한지가 벌써 삼년이 되었구나)
夢寐猶難見(꿈속에서도 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幽明豈棄捐(유명이 다르다하여 어찌 내버려 두겠느냐)

그 분의 블로그 주소----------------

http://blog.daum.net/posangofworld/8929179

출처 : 백촌거사와 함께하는 한시여행
글쓴이 : 백촌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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