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
履慶 |
履中 |
履基 | |||
22세 |
明淳 生父 履基 |
祖淳 |
龍淳 | |||
23세 |
興根 |
應根 |
弘根 |
左根 |
元根 |
逌根 生父 祖淳 |
24세 |
炳德 |
炳始 |
炳溎 |
炳冀 |
炳地 |
炳㴤 生父 弘根 |
25세 |
宗圭 |
容圭 |
性圭 |
用圭 |
錫圭 |
定圭 |
7대조 金履基 할아버지
8대조 김달행의 아들은 세 분으로 김이기(金履基 |자 德汝 1724~ 1790), 김이중(金履中 | 자 時可 1736~ 1793), 김이경(金履慶) 이십니다.
한중록을 통해본 당시의 어려운 경제사정
8대조 할아버지를 향리에 모셔놓고 이때부터 이곳은 저희 가문에 선영이 되었습니다.
7대조 할아버지 형제들은 어디서 사셨을까? 형제분은 모두 세 분인데 김달행의 장자는 저의 7대조 김이기, 차자는 김이중으로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부친이고, 막내는 김이경입니다. 그러면 한중록에 실려 있는 당시의 모습을 보겠습니다.어머니는 형제가 세 분인데 그 중 일찍 홀어머니가 되신 김생원댁(김달행의 부인)을 어머니께서 극진히 섬기셨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께서 이종들을 자식같이 불쌍하게 여겨 양식과 옷을 대여 주셔서 배고픔과 추위를 잊게 하였다. 그래서 이종들이 항상, “사람마다 어머니가 한 분이지만 우리는 두 분이시다. 라며 감격하였다. 이종 김이기씨는 신유년 늦봄에 외가에서 혼인을 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가 계셨다. 막내 작은 어머니이신 이모 송참판댁 장녀도 외가에 가 계셧다가 그 혼인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참석하였다. 나는 그 때 상복 입을 나이가 되지는 않았다. 흰 옷을 입었더니 어머니는 나에게 , “ 남은 저렇게 곱게 입었는데 너도 저렇게 입어봐라, ”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할아버지 상복을 입어야 하니까 다른 아이들과 같이 빛깔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되지요. ” 나는 문밖에도 나가지 않고 몸가짐을 삼갔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도 보통 때 가르친 교훈 때문인 것 같다.
인용: 지경사 발행, 한중록 PP11~ 12.
위 내용으로 보아 당시 삶이 상당히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풍고집에서도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큰 아버지(김이기)에게 의존했다고 하는데 7대조 할아버지도 위 한중록에서 살펴본바 가문의 경제를 이모인 혜경궁 홍씨의 친정 어머니인 한산이씨, 그리고 외가인 한산이씨댁의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아 7대조 할아버지도 상당히 어려운 삶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정계에 출사하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문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님은 말씀하시기를 7대조 김이기 할아버지께서 공부하실 때 스승님이 얼마나 엄격하셨는지 훼초리로 매를 맞으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종아리에서 피가 나고 곪아 터져 구더기가 생기면서까지 그래도 공부하는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연히 인터넷 금요고서방 경매 사이트에서 할아버지의 간찰을 보게되었고 경력까지 겹드러져 여기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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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기(金履基)
관력 : 능주목사(1782.10.17)
서원현감(1784.8.8) 당 편지는 서원현감 재직시 씀(피봉참조)
인천부사(1776.3.26)
광주목사(17878.14)
출처: 아래
7대조 할아버지는 광주 목사를 역임하셨는데 아들은 장자 김용순이고 둘째는 김명순인데 막냇동생 김이경 앞으로 입적하였습니다. 생존 시의 모습은 묘표 등에 나와 있을 것입니다.
8대조 김달행의 둘째 아들은 김이중으로 서흥부사를 역임하셨는데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부친입니다.
셋째 아들은 김이경인데 아들이 없어 큰형님의 둘째아들 김명순이 입후하였습니다.
향리에는 8대조 김달행의 묘소를 중심으로 이기, 이중 형제의 묘소가 부친 김달행 묘소를 양쪽에서 호위하는 형국이었는데 이중 할아버지는 언제인가 이웃마을인 계전리로 이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개군면 향리는 8대조 김달행의 묘막, 개군면 계전리는 김이중의 묘막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김이경 할아버지의 묘소는 부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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