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취정 김원근(翠庭 金元根) 할아버지

추읍산 2009. 8. 30. 01:04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生父 泳根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김원근[ 金元根 1786(정조 10)~1832(순조 32)] 할아버지

 

김원근(金元根) 한국학 홈 > 역사와 인물 > 조선의 방목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순조(純祖) 27년

과거시험연도 : 1827 정해

시험명 : 정시(庭試)

등위 : 병과18(丙科18)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원근(金元根)

자 : 경미(景渼)

본관(本貫) :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 경(京)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수(守)


[가족사항]

부(父) : 김조순(金祖淳)

조부(祖父) : 김이중(金履中)

증조부(曾祖父) : 김달행(金達行)

외조부(外祖父) : 심건지(沈健之)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bang/detail?sn=1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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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취정 김원근( 翠庭 金元根 1836~ 1832)은 영안 부원군 김조순과 청양부부인 심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저의 5대조인 황산 김유근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년년생입니다. 1827년(순조 27) 정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고 1832(순조 32)년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나 같은해 12월 27일 47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더구나 1832년은 4월 3일 부친께서 별세하셔서 같은 해에 당한 슬픔이었습니다. 이 서보를 접한 순조 대왕은 다음과 같이 하교하십니다.


전 참판 김원근(金元根)이 졸하였다. 하교하기를,

“국구(國舅)의 상사(喪事)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재신(宰臣)이 지금 또 서거하였다. 비단 그 집안을 위해서만 슬퍼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후(仁厚)하고 충근(忠勤)함은 참으로 쉽게 얻기 어려우니, 그래서 더욱 슬퍼하는 것이다. 작고한 참판 김원근의 집에 퇴맞은 관판(棺板) 한 벌을 실어 보내고, 상수(喪需)도 해조(該曹)로 하여금 되도록 후히 실어 보내게 하라.” 하였다.

                                                                                         인용: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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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정 김원근(翠庭 金元根 1836~ 1832) 조상님에 대하여는 인터넷상이나 문헌상의 기록이 극히 미미하여 그 자료를 찾기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영안 부원군의 장자인 김유근과 막내아들인 김좌근의 글들이 쏟아짐을 볼 때 이와 극히 대비된다. 이는 짧은 출사기간을 고려하더라도 영안 부원군의 대통을 이으셨음을 생각할 때 이 또한 세도의 풍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부원군 할아버지의 뜻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하옥 김좌근이 조정에 본격적으로 출사한 것은 김조순 별세 6년 후인 1838년 과거급제 이후부터입니다.) 성격 또한 착하시고 조용하셔서 세상에 들어내놓고 활동하지 않으셨음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인후(仁厚)하고 충근(忠勤)한 덕으로 늘 과묵하시고 세상 밖의 시끄러움이 있어도 燕坐超然不出門( 제비처럼 초연히 앉아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하셨다.

.

그 모습은 운명 이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에 있는 묘소에서도 드러난다. 부원군 할아버지의 묘소와 작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잡은 취정 김원근 조상님 묘역은 비석 하나 없이 일반인들의 묘소와 비슷한 크기의 묘역으로 되어 있어 이 또한 당시의 검소한 가풍이 나타난 결과이다. 취정 조상님의 대하여는 본 블로그 "내 동생 원근을 추모하며"에 실린 내용을 참작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취정 김원근(翠庭 金元根) 조상님이 지으신〈자경지함흥일기 慈慶志咸興日記〉를 소개합니다.


19세기초 정치권력의 핵심인물인 김조순의 둘째 아들.

자는 경한(景漢). 순조의 비인 친동생에게 궁중생활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자경지함흥일기 慈慶志咸興日記〉라는 순국문 일기를 지었다. 그 뜻은 '자경전 마마(곧 순조비)의 뜻을 받들어 지은 함흥 다녀온 일기'로 풀이된다. 이 작품은 지은이 나이 25세인 1810년에 함경도관찰사의 외숙(5촌 종백부의 오기) 김명순의 수행원이 되어 서울을 출발하여 함흥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일정, 전설, 역사적 사실 및 금강산 경관 등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시문학〉 86~88호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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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119494&v=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