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호남의 너른 들판을 딛고 다시 일어서다.
한편, 이 무렵 백제도 새 수도 웅진(충남 공주)에서 국가 재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다시름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평을 얻게 되었다.
*부여 송산리 고분군
멋진 외모로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무령왕은 저수지 제방을 쌓은 등 국가적 지원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최대의 곡창 지대인 호남 평야의 경영에 성공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지지 속에 왕권을 강화하고, 중국 남조와의 외교를 강화함으로써 백제 중흥의 싹을 틔웠다.
*무령왕릉 내부
*무령왕릉 지석
*무령왕릉 출토 금제품
*무령왕릉 출토 귀걸이
*부여 능산리 고분 내부
무령왕을 이은 성왕은 백제 중흥의 대표적인 군주였다. 그는 축적된 국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방어적 지형인 웅진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낀 사비성(충남 부여)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도 ‘남부여’로 고쳤다.
*부여의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백제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 향로는 신라와 싸우다 죽은 성왕을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스로 불경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백성들의 삶을 평안하게 보살핌으로써 ‘성스러운 왕’ 즉 성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때 겸익은 인도에까지 가서 불법을 구하였으며, 노리사치계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 주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hummanist
출처 : 山寺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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