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1

추읍산 2009. 11. 27. 13:17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55)

 

 

1,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1                    47 × 34

(182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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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1      (도록   p293)

(1820, 10, 20)                            

                                                   

雪霽天高 稍可人意 日來侍況如何 大人調候自己痔病 幷有減勢否 念念不弛

설제천고 초가인의 일래시황여하 대인조후자기치병 병유감세부 염염불이


吾一樣而  黃病痢則幾乎止息 而遍身刺痛 書夜苦痛 且緊虛症 對食則還甚壓意

오일양이  황병리즉기호지식 이편신자통 서야고통 차긴허증 대식즉환심압의


間或失時 昏昏不省 所見甚悶 又無問議處 海伯來在黃州 故專書請卞宜               간혹실시 혼혼불성 소견심민 우무문의처 해백래재황주 고전서청변의


而姑不到耳 如是之際 傍人澌憊 鶴堂則己病倒 汝慈則和衣瞥睡 不啻五起

이고부도이 여시지제 방인시비 학당즉기병도 여자즉화의별수 부시오기


恐生他憂  極悶極悶 有潑云 火下暫草不一  長湍事 誠一變怪

공생타우  극민극민 유발운 화하잠초불일  장단사 성일변괴


 人言人間好爵 無過大監 大監亦逢是厄 驚嘆驚嘆

 인언인간호작 무과대감 대감역봉시액 경탄경탄


庚辰十月卄日夜 父

경진시월입일야 부


눈이 개고 하늘이 높아지니 약간 살 것 같다. 요즈음 어른 모시고 어떻게 지내느냐? 대인(大人)1)의 병세와 너의 치칠은 모두 차도가 있느냐?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한결같이 지낸다. 황주(黃州)의 설사병은 거의 멈추었지만, 온 몸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어 밤낮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또한 허증(虛症)이 심하여 먹을 것을 보면 도리어 심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간혹 먹는 시간을 놓치면 정신이 혼미하여 인사불성이 된다. 옆에서 보기에 민망하고 더욱이 병을 의논할 곳이 없다. 해백(海伯: 황해도 관찰사)이 황주(黃州)에 와 있어서, 전인(專人: 편지를 보내기 위한 목적만으로 특별히 보내는 심부름꾼)을 보내 변(卞) 의원을 청하는 편지를 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러한 때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은 점차 지쳐가고, 어머니는 이미 병으로 누위 계시며, 네 어머니는 옷을 입은 채로 잠간 잠들었다가 하룻밤에도 다섯 번 이상 깨어나니 또 다른 사고가 나지나 않을까 매우 걱정이다. 그쪽으로 가는 파발이 있다기에 불을 켜고 급하게 대강 쓰며 이만 줄인다.


(추신) 장단(長湍)의 일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변괴이다. "세상의 좋은 벼슬에 대감(大監)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대감도 이런 액운을 만나다니 매우 놀랍고 개탄스럽다.


1820년 10월 20일 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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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인(大人)은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수신자의 생부인 김조순(金祖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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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쓴 때를 기록해 놓아서 좋았습니다. 편지에서 보면 일가와 가족 간에 오가는 편지에는 날자를 기록해 놓았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편지와 시 등, 일부 유묵에는 날자를 기록해 놓지를 아니하였음도 알 수 있습니다.


수차 밝힌 바와 같이, 김유근은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장자이나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 종 백부인 김용순(金龍淳, 1754~1823) 앞으로 입후(入後)하였습니다. 가장 촉망받는 아들이며 장자인 김유근이 종백부인 김용순에게 입적되었음은 그때 종가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하였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장자가 아니어도 되었는데 그렇게 하였음은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숭조사상(崇祖思想)과 인품(人品)의 아름다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김조순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습니다. 큰아들에 황산 김유근(黃山 金逌根 1785~ 1840), 둘째는 취정 김원근(翠庭 金元根, 1786~1832), 그리고 막내아들이 하옥 김좌근(荷屋 金左根, 1797~1869)입니다. 김유근이 큰 댁으로 입적하였음으로 김원근이 김조순의 대통을 잇게 됩니다.


저의 6대조인 김용순이 아들 김유근에게 편지 쓸 때는 어느 곳에 계셨을까? 위 편지 해석문을 보면 황주(黃州)의 설사병은 거의 멈추었지만, 그리고 도록 p314 김홍근(金弘根)이 김유근에게 보낸 편지 1, 해석문에 황주(黃州) 관아의 안부를 묻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김유근의 부친 김용순은 그때 황주 목사의 직책을 수행 중이라고 판단합니다. 당시는 통신 수단이 발달하여 있지 않았으으로 인편이 유일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때 편지에서 보면 김유근은 서울 삼청동의 백련사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저의 6대조이신 김용순은 67세로 년로하셨는데 집에서 쉬시지 않고 왜? 객지에 나가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병환이 깊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제 귀경하셨을까? 저의 6대조인 김용순은 이로부터 3년도 못사시고 1823년(순조 23) 4월 14일 운명하십니다. 김용순에 관한 사항은 아래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용순은 어떤 분이실까?  :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