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3

추읍산 2009. 11. 29. 17:55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57)

 

 

3.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3                     47 × 34

(1820년.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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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3 (도록 p294~295)          

(1820년. 11. 2)

 

 

撥至卽見書  知近況安過  可喜可喜 大人行次  似己還第 至憊可想 ○○非久奉祠

발지즉견서  지근황안과  가희가희 대인행차  사기환제 지비가상 ○○비구봉사


宇挈眷   會兒衙  大可羨也  汝則艱得是養 可歎可歎  吾一樣  而近因日候不調

우설권   회아아  대가선야  여즉간득시양 가탄가탄  오일양  이근인일후부조


邑底多感氣  自不覺時時鼻涕  頭疼可怕     南書見之    拓見聞者行止也

읍저다감기  자불각시시비체  두동가파     남서견지    척견문자행지야 


祭駄馬姑不還耳  爲見答  姑不一一

제태마고불환이  위견답  고불일일


庚之陽二夕 父

경지양이석 부


파발이 와서 즉시 편지를 보고 요즈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니 매우 기쁘다. 대인(大人)의 행차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은데, 몹시 피곤할 것이라 생각된다. ○○가 멀지 않아 사우(祠宇)를 모시고 권속을 데리고 아들의 관아에서 모이는데 크게 부럽구나. 너는 나를 이렇게 간신히 봉양하니 매우 한탄스럽다. 나는 한결같이 지낸다. 그러나 근래에 일기가 고르지 않아 고을에 감기 환자가 많고, 나도 모르게 때때로 콧물이 흐른다. 머리가 쑤시는 것도 두렵다. 남(南)의 편지는 보았다. 그 사이 안부를 잘 알았다. 제사 물품을 실은 말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답장을 보내도록 하여라. 이만 줄인다.


1820년 11월 2일 저녁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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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파발[擺撥] : 조선 후기에, 공문을 급히 보내고자 설치한 역참을 말하며 그 공문을 전하는 사람을 파발마, 또는 파발꾼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파발마(파발꾼)를 말한다.


사우(祠宇)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을 말하며 사당[祠堂]이라고 한다.


이때 김용순은 67세였다. 대인(大人)은 김유근의 생부(生父)인 영안 부원군 김조순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때 4촌 동생인 김조순이 잠시 들렸는가 보다. 그 근무처인 황주(黃州) 근처를 지나면서 오신 것으로 생각한다. 한 지인(知人)이 그 아들의 관아에서 권속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부러워하면서 아들 김유근에게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마음일 뿐  아들 김유근(金逌根)은 父親과 生父 양쪽 부모 모두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 했을 것이다.

객지에서 맡은바 소명을 다 하시고 노환 중임에도 제사용품을 수집하여 보내는 참의공 할아버지[金龍淳 : 최종 직책이 공조 참의(工曹 參議)를 하셔서 집에서는 참의공 이라고 불렀다]의 숭조사상(崇祖思想) 인상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