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141
대산집(臺山集)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문집. 활자본. 김매순의 자는 덕수(德叟),호는 대산(臺山)으로 김이수(金履鏽)의 아들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예조참판과 강화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로 홍석주(洪奭周)등과 함께 명성이 높았으며,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대산집』은 20권1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부(詩賦), 소차(疏箚), 편지,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雜著)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5~20은 「궐여산필(闕餘散筆)로서 經史子集(경사자집)의 여러 저서를 읽은 후 의문점을 논변한 것인데, 이러한 독서후기는 18, 19세기 경화세족문인들이 많이 쓴 글이다. 권 15는 <천지제일(天之第一), 권 16은 <상서제이(尙書第二)>, 권 17은 <용촌제삼(榕村第三)>, 권 18은 <주말제사(周末第四)>, 권 19는 <문왕제오(文王第五)>, 권 20은 <용비제육(龍飛際六)>이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권19의 <문왕제오>의 내용은 고금(古今) 사서(史書) 및 당송팔대가, 주자서(朱子書)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문자에 대한 고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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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수(德叟), 호는 대산(臺山)이다. 그는 문곡 김수항의 여섯 아들인 6창(六昌)중에 3남인 김창흡(金昌翕)의 현손(玄孫)이며, 군수(郡守) 김범행(金範行)의 손자이고 참봉 김이수의 아들이다.
그는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에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을 합하여 10번째 안에 드는 문장가란 뜻이다. 그만큼 대산 김매순의 학문은 넓고 깊었다. 고조부인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때 안동김문의 학문과 문화를 사랑하는 문풍(門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저서에 위 대산집과 전여일록(篆餘日錄), 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등이 있다.
그는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벽계에서 살았는데 이는 그의 고조부 김창흡이 이곳에서 살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벽계에서 살 적에 이웃하여 있는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마재에는 다산 정약용이 살았다. 두 분은 우정이 남 달랐다고 하는데 이런 야기가 있다. 『--생략. 서종면 노문리 벽계에서 살았는데,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자주 왕래하였다. 매순이 가난에 허덕이는 다산에게 농사지을 땅을 줄 것이니 들어와 농사를 지으라고 하여 아들 셋을 데리고 3년간 농사를 지으며 살았었다. 그러나 실패함으로 다시 와부면 능내리 마현으로 돌아갔다.-- 인용 : 2006, 12, 30 발행, 양평 문화원의 楊平人物誌(上) p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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