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신년에 병들어 누워있으니 자못 한가하게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장수

추읍산 2009. 12. 19. 12:53

 

新年病臥  頗有閒居之感  遂次張水屋旅窓自述十首  以見志

신년병와  파유한거지감  수차장수옥여창자술십수  이견지


신년에 병들어 누워있으니 자못 한가하게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장수옥(張水屋)41)「여창자술(旅窓自述)」열 수에 차운하여 나의 뜻을 보인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餘生何苦短  여생하고단   남은 인생 어찌 그리 짧은가

時序屢推薦 시서루추천    계절이 여러번 바뀌었구나

閒鎖臨江屋  한쇄임강옥   강가에 집 그냥 닫아 두고

虛抛負郭田  허포부곽전   성 근처 전답 헛되이 버려두었지

紅塵迷往日  홍진미왕일   지난 날 속세에서 헤매더니

白髮感新年  백발감신년   백발 되어 새해 맞으니 감상에 젖네

到死携難去  도사휴난거   죽을 때 가지고 가기도 어려우니

誰能但愛錢  수능단애전   누군들 그저 돈만 좋아하겠는가


無聊成久病  무료성구병  무료함이 묵은 병 되었는데

叵耐是閒愁  파내시한수   견디기 어려운 건 이유 없는 시름이라

簪履記何益  잠이기하익   벼슬살이 기억한들 무슨 도움 되겠는가

桑榆攻未收  상유공미수   늘그막까지 공적을 이루지 못했으니

生爲兒女戀  생위아여연   살아서는 아녀자들이 혀를 차고

死作鬼神羞  사작귀신수   죽어서는 귀신들이 수치로 여기겠지

漫遣燈前夢  만견등전몽   부질없이 등불 앞에서 졸음 쫓으며

幾回遶九州  기회요구주   몇 번이나 온 세상을 돌아다녔던가


逢新旬有五  봉신순유오   새해 맞이한 지 보름 되었는데

塵事不相關  진사불상관   속세의 일은 상관하지 않는다네

官自去年冷  관자거년냉   벼슬은 작년부터 별 볼 일 없고

身從今日閒  신종금일한   몸은 오늘부터 한가해졌구나

被人壞好僕  피인괴호복   심부름 보낼 좋은 종놈 드물고

迎客少嬌鬟 영객소교환   손님 맞을 어여쁜 계집종 적구나

一榻無餘地  일탑무여지   평상 하나 놓고 남는 자리 없으니

起居獨對山  기거독대산   앉으나 서나 홀로 산을 마주하네


死生元有定  사생원유정   죽고 사는 것 원래 정해진 법이니

藥餌詎扶持  약이거부지   약으로 어찌 연명할 수 있겠는가

涉世心逾? 섭세심투졸   세상 살아감에 마음 더욱 졸렬해지고

治家計未奇  치가계미기   집안 살림 뾰족한 계책이 없구나

難分塞翁案  난분새옹안   세옹지마(塞翁之馬) 교훈 깨닫지 못해

空惹海鷗疑  공야해구의   괜스레 갈메기의 의심42)만 불러왔지

少壯知何日  소장지하일   젊은 시절 언제였나

衰頽異曩時  쇠퇴이낭시   노쇠하여 그때와 다르구나


憶昔少年日 억석소년일   생각해보면 지난 젊은 시절

自期信不輕  자기신불경   스스로 기약함이 정말 가볍지 않았네

早知耽學術  조지탐학술   일찍이 학문에 몰두했지만

晩覺誤身名  만각오신명   만년에 입신양명(立身揚名) 실패한 걸 깨달았지

傲骨乖時樣  오골괴시양   오만한 성격 시속과 맞지 않고

恒言拂世情  항언불세정   평소 하는 말 세태를 거슬렸지

塵琴空在匣  진금공재갑   먼지 쌓인 거문고 하릴없이 상자에 있으니

何處試新聲  하처시신성   어디서 새로운 곡조 시험해보랴43)


市虎寧關客  시호령관객   근거 없는 참소 나그네와 무슨 상관 있는가

河豚定殺人  하돈정살인   복어야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네

紛紛名化利  분분명화리   어지러히 명성으로 이익을 낚고

咄咄假迷眞  돌돌가미진   안타깝게 가짜가 진짜 노릇 하는구나

檢簿勘功罪  검부감공죄   문서 점검하여 공과 죄를 따지고

萌心作果因  맹심작과인   싹트는 마음이 원인과 결과를 만드는데

茫茫千古恨  망망천고한   아득한 천고의 한스럼이여

誰絶天地親  수절천지친   붙어있는 하늘과 땅을 누가 끊겠는가


有時回直道  유시회직도   때때로 바른 도를 굽히고

作意寓俳諧  작의우배해   일부러 농담을 지껄이며

借劍聊爭氣  차검료쟁기   검을 빌려 애오라지 기세 다투고

引觴漫瀉懷  인상만사회   술잔 들어 멋데로 회포를 쏟네

但能事揮霍  단능사휘곽   그 저 분방하게 살아갈 뿐

何苦笑椎埋  하고소추매   어찌 굳이 난폭함을 비웃겠는가

相看渾如夢  상간혼여몽   지난 인생 떠올리니 모든 것이 꿈결 같은데

白頭是舊儕  백두시구제   흰 머리 노인이 바로 옛 벗이라네


心與市朝隔  심여시조격   마음은 세속과 멀리 떨어져 있어

此間斷不忙 차간단불망   이곳에서는 전혀 바쁘지 않네

避名兼失實  피명겸실실   명성을 피하려다 아울러 실행마져 잃고

醫病反成狂  의병반성광   병을 치료하다가 도리어 미치광이 되었네

東郭多驕客  동곽다교객   동곽(東郭)의 교만한 사람44) 많은데                 

南柯幾夢場  남가기몽장   남가일몽(南柯一夢) 몇 번이나 꾸었던가

我今何所見 아금하소견   나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

天色正蒼蒼  천색정창창  하늘빛은 참으로 푸르기만 하구나


安眠與飽食  안면여포식   편안히 자고 배불리 먹는 것

而外百無能 이외백무능   그 이외엔 도무지 잘하는 게 없지

材短寧支厦  재단령지하   재주 짧으니 어찌 큰 임무 감당하랴만

位高忝伐氷  위고첨벌빙   지위 높아져 경대부(卿大夫) 되었네

傳家無謗史  전가무방사   집에는 잘못에 대한 기록 전하지 않고

尊閣有遺經  존각유유경   높은 다락에는 성인이 남긴 경전만 있네

謝客還淸坐  사객환청좌   손님 사절하고 다시 조용히 앉으니

不妨似戒僧  불방사계승   승려와 비슷하다 해도 무방하리라


習嬾仍成癖  습란잉성벽   게으름에 익숙하여 그대로 버릇되니

常思謝筆簪  상사사필잠   항상 드는 생각 벼슬 그만 두는 것

未應愁甔石  미응수담석   양식 없는 것도 걱정하지 않으니

何遽貴籝金  하거귀영금   어찌 황금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馴鶴能知字  순학능지자   학을 길들이니 능히 글자를 알고

調鸚妙解音  조앵묘해음   앵무새 조련하니 묘하게 말을 이해하네

朝雲頗識趣  조운파식취   아침 구름에 자못 흥취가 생겨

持酒澆狂吟  지주요광음   술잔 들고 거침없이 노래 쏟아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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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장수옥(張水屋) : 청나라 산서(山西) 부산인(浮山人)으로, 이름 도악(道渥), 자 봉자(封紫)이며, 수옥은 그의 호이다. 장풍자(張風子)라 자호(自號)하였다.


42) 갈매기의 의심 : 『열자(列子)』「황제(皇帝)」에,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갈매기와 노닐곤 하였는데, 기심(機心)이 한 번 발동하자 갈매기가 내려와 앉지 않았다. " 했다. 여기서는 작자가 기심을 갖고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의심했다는 것이다.


43) 먼지 쌓인...시험해보라 : 주 37) 참조.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줄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44) 동곽(東郭)의 교만한 사람 : 제(齊)나라 사람이 처첩(妻妾)을 거느리고 사는데, 매일 나가 술과 밥을 실컷 먹고 돌아와, "부귀한 사람과 함께 먹었노라." 교만을 떨었다. 아내가 의아하여 남편을 뒤쫓아 가 보니, 동곽(東郭) 묘지(墓地)에 가서 제수(祭需)의 나머지를 빌어먹고 오는 것이었다. <『맹자(孟子)』「이루(離婁)」하」> 벼슬과 명예를 구하기 위해 간과 쓸개를 다 빼줄 것처럼 구차하게 행동하면서도 집에 와서는 식구들에게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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