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다시 앞시에 차운하다

추읍산 2009. 12. 29. 15:37

 

福次前韻 복차전운

다시 앞시에 차운하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致主當時念  치주당시념  임금께 충성 바치자는 당시의 생각

因何更就遷  인하갱취천  무엇 때문에 또다시 변했는가

傾家猶結客  경가유결객  가산을 기울여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絶意不求田  절의불구전  전혀 집안 살림 돌보지 않았네

丕擬尋初服  비의심초복  초복(初服)45)을 찾고자 크게 마음먹고

常思假數年  상사가수년  항상 몇해만 더 몇해만 더 생각했지만

生平無報效  생평무보효  평소에 충성을 바치지 못하고

徒費大官錢  도비대관전  한낮 고관에 녹봉만 낭비했구나


落地爲男子  락지위남자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났는데

其餘詎足愁  기여거족수  나머지는 무엇을 걱정하리오

酒從田舍飮  주종전사음  술은 농가에서 마시고

詩許錦囊收  시허금낭수  시는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네

結駟誠堪樂  결사성감락  네 마리 말 화려한 수레 즐거운 일이지만

蓋棺可不羞  개관가불수  관 뚜껑 덮을 때 부끄럽지 않겠는가

山林與鐘鼎  산림여종정  산림처사와 고관대작 중에

幾個羡揚州  기개선양주  몇 사람이나 양주 지사(揚州知事)를 부끄러워할까46)


今歲饒佳趣  금세요가취  올해에도 좋은 흥취 넘쳐나

長時自掩關  장시자엄관  오래도록 문을 닫고 지내네

借籌從客勸  차주종객권  좋은 계획 세워 손님에게 권유하고

折券與人間  절권여인간  술을 사 남들과 한가히 어울리네

臥月憑嘲肚  와월빙조두  누워 바라보는 달빛으로 욕심을 비웃고

臨風倩整鬟  임풍천정환  바람 맞으며 머리칼 정돈하니

壺中九華秀  호중구화수  호중구화석(壺中九華石)47)이 아무리 빼어나도

爭得似家山  쟁득사가산  어찌 고향산천과 같을 수 있겠는가


點檢平生事  점검평생사  평소의 일을 점검해보니

分明左契持  분명좌계지  좌계(左契)48)를 잡은 듯 분명하구나

許身寧避險  허신령피험  나라에 몸을 허락했으니 어찌 위험을 피하랴

出語不循奇  출어불순기  말을 꺼냄에 기기묘묘함 따르지 않았네

有馬從人借  유마종인차  말이 있으나 남에게 빌린 것이요

還金斷友疑  환금단우의  돈 빌려준 건 우애 끊어질까 염려해서지

喜逢堯與舜  희봉요여순  요순(堯舜) 시절 만나 기쁘도다

溫飽己多時  온포기다시  이미 오랫동안 따듯하고 배불렀으니


事過知悔晩  사과지회만  일이 지나갔으니 후회한들 늦고

病祛覺身輕  병거각신경  병이 없어지니 몸이 가벼워지네

未了生前債  미료생전채  생전의 빚을 갚지도 못했는데

猶眈死後名  유탐사후명  오히려 사후에 명성을 탐내는구나

輪蹄趍捷徑  윤제추첩경  수레와 말은 벼슬 찾아 지름길로 달려가고

雲雨幻交情  운우환교정  남녀의 사랑에 미혹되는구나

浮世同人我  부세동인아  덧없는 세상 남이나 나나 마찬가지

悠悠得此聲  유유득차성  영원토록 이런 소리 듣겠지


吟哦成日課  음아성일과  읊조리는 것이 일과가 되어

閒事復忙人  한사복망인  일 없더니 다시 사람을 바쁘게 하네

宦味濃招冷  환미농초랭  벼슬하는 맛 짙으면 냉담함을 부르고

酒精爛見眞  주정란견진  술 마실 마음 무르익으면 참모습 보게 되네

屈伸應有理  굴신응유리  굴신왕래(屈伸往來) 응당 이치가 있고

欣戚竟相困  흔척경상곤  기쁨과 슬픔 결국 서로 원인 되지

始看俄趍市  시간아추시  한번 보게나, 서둘러 저자로 달려가

倬頭幾所親  탁두기소친  친한 사람 몇이나 도리질하며 거절하는지


向卜東郊宅  향복동교택  지난날 동교(東郊)49)에 집터를 정하고는

逝將志願諧  서장지원해  장차 뜻대로 되려나 생각했지

農桑勤大本  농상근대본  농사와 양잠하며 큰 근본에 힘쓰고

魚鳥娯衰懷  어조오쇠회  물고기 새와 어울려 쇠잔한 마음 달래려 했는데

無暇身空縶  무가신공질  겨를 없 몸은 부질없이 매여 있고

有愁骨可埋  유수골가매  시름 생겨 뼈를 뭍을만 하구나

所嗟心跡異  소차심적이  마음이 행적과 달라 한숨만 나오니

遲暮媿同儕  지모괴동제  늘그막에 벗들에게 부끄럽구나


四時相代謝  사시상대사  사계절이 번갈아 바뀌니

天地亦云忙  천지역운망  천지도 역시 바쁘구나

君子眞皆老  군자진개노  군자는 참으로 모두 늙었으나

世人豈盡狂  세인기진광  세상 사람들 어찌 다 미쳤겠는가

蜩螳方覘隙  조당방점극  시끄러운 소인들 지금 한창 틈을 엿보고

蠻觸自爭場  만촉자쟁장  만(蠻) 촉(觸)은 제멋대로 땅을 다투는데50)

多少乘除事  다소승제사  여러 가지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일들

種誰質彼蒼  종수질피창  누구에게 물을까, 저 하늘에 묻노라


禹稷昔躬稼  우직석궁가  우(禹)임금과 직(稷)도 그 옛날 몸소 농사지었으니51)

何妨鄙事能  하방비사능  비천한 일에 능한 것이 무슨 문제 될 것인가

利名爭細月  이명쟁세월  이익과 명성 다투는 사이 세월이 흘러가고

得失險淵氷  득실험연빙  이해득실은 깊은 못이나 얇은 얼음보다 위험하지

身路猶看劒  신노유간검  몸은 늙었으나 그래도 검을 보고

家貧不典經  가빈불전경  집이 가난해도 경전을 저당 잡히지 않네

誤人眞俗累  오인진속누  속세의 굴레 정녕 사람을 그르치니

決意欲逃僧  결의욕도승  결심하고 중이 되어 도망하고 싶구나


壯心何日盡  장심하일진  씩씩한 마음 언제 사라져버렸나

短髮不勝簪  단발불승잠  드문 머리칼 비녀를 이기지 못하네

負謗從汝屋  부방종여옥  비방 받는 것은 집채처럼 크고

論交媿斷金  논교괴단금  교제는 단금지교(斷金之交)52)에 부끄럽구나

文章非謂道  문장비위도  문장은 문장이요 도(道)는 도일 뿐이니

絲竹詎關音  사죽거관음  악기가 어찌 가락과 관계되겠나

任汝冲霄氣  임여충소기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에 맡겨

無聊一醉吟  무료일취음  무료하여 한번 취해 읊어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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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초복(初服) : 벼슬하기 이전에 입던 청결한 옷. 재야 생활을 일컫는다.


46)몇 사람이나...부러워할까 : 양(梁)나라 하손(何遜)이 양주 지사(揚州知事)가 되었는데, 관사에 매화 한 그루가 있어 때로 그 매화를 두고 시를 읊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낙양으로 돌아와서도 늘 그 매화를 생각했는데, 재임을 청하여 허락을 받아 종일토록 나무 밑을 서성이며 시를 읊었다. <『양서(梁書)』「열전」43 하손 조항>


47) 호중구화석(壺中九華石) : 소식(蘇軾)의 호중구화시서(壺中九華詩序)에, "이정신(李正臣)에게 특이한 돌이 있었는데, 아홉 봉우리가 영롱하고 뚜렷하며 창령(窓櫺)과 같았다. 나는 1백 금(金)으로 그것을 사서 구지석(仇池石)과 짝을 지으려 했는데 남쪽으로 옮기게 되어 미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을 호중구화라 명명하고, 동시에 시로써 기록한다." 하였다.


48) 좌계(左契) : 계약을 두 장으로 쪼개어 하나는 좌계로 하고 하나는 우계로 하였다가 나중에 마주 붙여 증거로 삼는 것인데, 좌계는 채무자가 소유하고 우계는 채권자가 소유한다. 여기서는 약속의 증표인 좌계를 우계와 맞추어 딱 들어맞듯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49) 동교(東郊) : 노가제(老稼齋) 김창업(金昌業)의 집이 있던 곳으로, 현 성북구 장위동이다. 작가가 무자년(1828, 순조 28, 44세)에 이 집을 개수하여 거처했다. (김유근 「김유근 화수정기(花水亭記)」


50)만(蠻)과...다투는데 : 달팽이 두 뿔에 만이란 나라와 촉이란 나라가 있는데, 서로 싸워서 송장을 백만이나 내었다고 한다. <『장자(莊子)』「?양(則陽)」>


51) 우(禹)임금과.. 농사지었으니 : 남궁괄(南宮适)이 공자(孔子)에게,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왕(禹王)과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天下)를 소유하셨습니다." 했다.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논어(論語)』 「헌문(憲問)」>


52) 단금지교(斷金之交) : 돈독한 우정이란 뜻이다.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상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른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