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글 포함하여)을 많은 사람이 추사 김정희의 영영백운도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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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樹白雲續圖
「추수백운속도(秋樹白雲續圖)」
我所思兮 아소사혜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이여
川原悠曠 천원유광 내와 들판은 텅 빈채 아득하네
睠彼秋樹 권피추수 저 가을 나무 돌아보니
白雲在上 백운재상 흰 구름 그 위에 떠 있네
舒卷惟意 서권유의 제 마음데로 퍼지기도 모이기도 하니
寧須定向 영수정향 어찌 정해진 방향이 필요하겠는가
搔首延佇 소수연저 머리 긁적이며 우두커니 서 있으니
心焉獨悵 심언독창 마음이 어찌 홀로 슬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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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秋樹白雲續圖) 은 추수백운도에 이어지는 글로 생각한다.
필자는 영영백운도가 추수백운도 이며 이는 추사가 그리고 그 안에 글은 황산 김유근이 쓴 것이라고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에 쓰다 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황산유고의 글은 심지기란찬(心芝氣蘭贊), 추수백운속도(秋樹白雲續圖), 화란찬(畵蘭贊)이 있는데(추수백운도에 쓰다 의 황산유고 영인본 참조) 이글들도 추사와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필자의 생각을 밝흰 바 있다.
필자는 황산이 위 글, 추수백운속도를 쓰게 된 동기를 아래와 같이 추리(推理)한다.
한 때 소원(疎遠)한 때가 있었던 황산과 추사의 우정은 비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지듯이 더 아름답게 꽃 피어나고 있었다. 황산과 추사, 이재(권돈인의 호)는 어느 날(1833~1836년, 특히 1833년(순조 33)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렵에는 황산과 추사의 우정이 다시 꽃 피어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황산 김유근의 집인, 삼청동의 백련사(현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자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추사는 秋樹白雲圖를 황산은 추사의 그림으로 알려진(芝蘭並芬) 心芝氣蘭贊을 그렸다. 그리고 황산은 추수백운도에 추사와 이재는 황산의 그림인 심지기란찬에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나서 황산은 추사와 이재를 바라보면서 지나온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치는 게 아닌가. 서로 석교(石交) 사이임을 확인하고 눈물이 흐르도록 감회에 졌어 들었다. 그리고 추수백운도에 글을 더 쓰고 싶었는데 그림이 있는 종이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종이에 쓰고 秋樹白雲續圖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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