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석교(石交) 사이

추읍산 2010. 6. 7. 21:46

 

석교(石交) 사이


황산 김유근(黃山 金 根 1785~1840)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이재 권돈인( 彛齋 權敦仁 1783~1859)을 가리켜 석교(石交 : 돌처럼 변하지 아니하는 굳은 교제) 사이라고 합니다. 2009년 양평군 발행 안동김씨 기증유물 도록에 실린 황산유고에는 아래 서화정(書畵幀 도록 p486~487)의 글이 있습니다.


서화정의 글을 통해서 위 세분의 우정의 깊이와 그 아름다움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도록에 나온 글을 보면서 많은 역사를 공부합니다. 옛날 분들은 편지를 제외한 많은 부분에서 그 작품(특히 글과 그림)이 탄생할 때를 기록해 놓지 아니하여 그때를 추정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필자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글을 써 내려옴에 있어 문맥을 살피고 집안에 전해오는 구전과 관련되는 서적, 그리고 지식의 바다인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때 모습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최대한 진실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書畵幀은  황산, 이재, 추사가 우정을 더 꽃 피웠던 1833~1836년경에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추적하면 황산이 1837년, 중풍으로 실어증이 오기 전의 쓴 글이 아닐까요? 그리고 書畵幀을 통해서 석교(石交) 사이라는 글이 우정을 상징하는 신조어로 굳어지기를 바랍니다. 새로 나온 책 박철상의 세한도(문학동네)에는 황산, 추사, 이재의 우정이 石交임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書畵幀 서화정

그림 족자에 쓰다


余與彛齋秋史 世所稱石交也 其相逢也 言不及朝政得失人物是非 又不及營利財貨

여여이재추사 세소칭석교야 기상봉야 언불급조정득실인물시비 우불급영리재화


惟商略古今 評品書畵而己 一日不見 則辄復悵然如失也 人之處世除却有憂患疾痛榮枯

유상략고금 평품서화이기 일일불견 칙첩복창연여실야 인지처세제각유우환질통영고


哀樂 何可無一日無故 無一日不見 此又難事 圖書者其人姓名字號 宛然俱在 如可覿其

애락 하가무일일무고 무일일불견 차우난사 도서자기인성명자호 완연구재 여가적기


人之彷拂 得一古畵幀 左右方皆搨兩公圖章 庸作替面之資 於是 雖謂之無一日不見 亦

인지방불 득일고화정 좌우방개탑양공도장 용작체면지자 어시 수위지무일일불견 역


可也云爾

가야운이


나와 이재(彛齋). 추사(秋史)는 세상에서 말하는 석교(石交)371) 사이이다. 서로 만나면 조정의 잘잘못이나 인물의 시시비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또 세속의 부귀영화나 재물 축적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고금의 역사를 토론하고 글씨와 그림을 품평할 뿐이고 , 하루라도 만나지 못하면 그때마다 서글프고 허전해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과 걱정, 질병과 고통, 영광과 좌절, 슬픔과 즐거움 따위 말고도 탈이 없는 날이 하루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만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일들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림과 글씨라는 것은 그것을 쓰거나 그린 사람의 이름과 자호(字號)가 뚜렷하게 그 속에 있어서 그 사람을 만나는 것과 거의 같다. 족자로 표구된 옛 그림을 하나 얻으면 왼쪽과 오른쪽에 이재와 추사의 도장을 모두 찍어 직접 만나는 것을 대신하는 자료로 삼는다. 그래서 매일 만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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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석교(石交) : 『사기(史記)』「소진열전(消盡列傳)」에 "이것이 이른 바 원수를 버리고 석교를 얻는 것이다. [此所謂棄仇?而得石交者也]"라고 했는데, 금처럼 두텁고 견고한 우정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