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아름답고 좋은 일이 뜻한 대로, <吉祥如意(길상여의)>

추읍산 2010. 12. 3. 14:57

 

아름답고 좋은 일이 뜻한 대로, <吉祥如意(길상여의)>

 

- 추사의 해서《묵서거사자찬》에 찍은 김유근 인장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살면서 복을 기원한다. 예전엔 그것을 오복이라고 했다. 오래 사는 것(수, 壽), 살 만큼의 재물이 있는 것(부, 富), 마음과 몸이 편안한 것(강녕, 康寧),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것(유호덕, 攸好德), 하늘이 준 수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고종명, 考終命)이다. 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에 존귀하게 되는 것(귀,貴)과 자손이 번창하는 것(중다, 衆多)를 꼽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 가족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오복을 누릴 뿐아니라 언제나 '아름답고 좋은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지기(길상여의, 吉祥如意)'를 바랐다. 그래서 생활용품 속에 길상의 뜻이 담긴 무늬와 문자를 넣어 사용하면서 이를 기원했다. <길상여의> 인장도 마찬가지이다.

 

김유근이 사용한 <길상여의> 인장은 추사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에게 해서로 써준《묵소거사자찬(墨笑居士自讚)》에 찍혀 있다. 김유근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아들로 세도 정치로 보자면 추사와는 다른 정파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추사는 물론 추사의 벗 권돈인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단짝 친구였다. 황산은 스스로 세 사람 사이를 세속의 시비를 벗어나 고금의 역사를 논하고 서화를 품평하는 석교(石交)로 비유했다. 석교란 돌처럼 굳게 사귀는 것을 가리킨다. 추사도 김유근을 각별히 생각했는데 추사는 자신의 시에서 ‘십년 동안 지팡이와 나막신으로 함께 했다’고 해 둘 사이의 오랜 우정을 표현했다.(추사의 시《증흥사에서 황산 시를 차운함(中興寺次黃山)》) 또 김유근이 벼루에 새길 글을 써주기 위해 여러 예서체로 연습한 작품이 남아 있다.

 

《묵소거사자찬(예서)》종이에 먹, 29.2X132.3㎝, 고 조재진 국립중앙박물관

 

《묵소거사자찬》은 『황산유고(黃山遺藁)』에 실려 있는 글로 묵소거사란 그가 죽기 4년 전에 중풍으로 실어증에 걸리면서 사용한 호이다. 이 작품은 중풍 때문에 목소리를 잃은 벗을 위로하기 위해 추사가 써준 것이다. 추사가 쓴 《묵소거사자찬》은 현재 두 점이 전하고 있다. 하나는 해서체로 쓴 것으로 거기에 이 <길상여의> 인장이 찍혀 있다. 다른 한 점은 예서로 쓴 작품이다. 두 작품은 서체만 다를 뿐 한 줄에 네 자씩 글자를 배치한 점 등이 모두 같다.

 

《미가산수도》 23X34㎝, 개인소장 

 

해서 작품에는 <길상여의> 인장 외에도 <默笑居士(묵소거사)> <金逌根印(김유근인)> <불구형사(不求形似)> <흉중성죽(胸中成竹)> <취와일편운(醉臥一片雲)> 등 김유근의 인장 21과가 표구 및 표구와 작품이 잇다는 부분에 빽빽이 찍혀 있다. 예서로 쓴 작품에는 <金正喜印(김정희인)> <阮堂隸古(완당예고)>라는 추사 인장과 <김유근인> <묵소거사> 의 김유근 인장이 찍혀 있다. 추사가 이 작품을 쓴 시기는 황산이 병을 앓기 시작해 세상을 뜰 때까지인 1836에서 18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각각 추사 50대 초반에서 중반에 쓴 해서와 예서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기서 김유근이 지은 글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시의(時宜)에 가깝고,

웃어야 할 때 웃으면 중용(中庸)에 가깝다.

옳고 그름의 가운데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굽히고 펴고 사라지고 자라나는 상황을 맞이할 때.

몸을 움직여서는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서는 사람의 정에 거스르지 않는다.

침묵하고 미소를 짓는다는 뜻은 큰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뜻이 전해지는데 어찌 침묵을 상하게 하겠는가!

중용 속에서 나오는 미소인데 어찌 웃음을 걱정하겠는가!

힘써야 한다.

내 정황을 돌아보니 묵소(默笑)로 화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겠다.

묵소 거사가 스스로 찬미하다.


當默而默, 近乎時, 當笑而笑, 近乎中.

周旋可否之間, 屈伸消長之際.

動而不悖於天理, 靜而不拂乎人情.

默笑之義, 大矣哉.

不言而喩, 何傷乎默.

得中而發, 何患乎笑.

勉之哉.

吾惟自況, 而知其免夫矣.

默笑居士 自讚


추사의 <길상여의> 인장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테두리를 친 가운데 ‘길상여의관(吉祥如意館)’이라는 글귀를 새긴 것이다. 추사 주변에는 길상여의 글귀를 인장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조희룡, 허련,신헌,한응기, 지운영, 민병석 등이 사용한 것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이들이 사용한 인장은 중국 은주시대 금문(金文)의 테두리처럼 ‘아(亞)’ 자형 안에 글자를 넣고 있어 이 시대 인장의 한 양식을 이루고 있다. 인장의 글자를 새기는 법인 자법(字法)을 살펴보면, 모두 김정희의 <길상여의관> 인장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인장을 통한 추사 학연과 학맥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길상여의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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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정보개발원의 그림과 글씨 속의 인장 이야기>아름답고 좋은 일이 뜻한 대로 에서 윗부분까지만 인용하였습니다.

출처 : http://www.koreanart21.com/common/sub01_03_view.php?idx=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