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병덕(金炳德)이 김정균(金定均)에게 보낸 편지 1

추읍산 2010. 12. 25. 16:09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01

 

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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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p 325~326

47. 김병덕(金炳德)이 김정균(金定均)에게 보낸 편지 1

(1822. 2. 6)


承書甚慰 而湯節無勝度 遠外悶慮 何以盡言 黃醫尙在傍 所進爲何劑耶

승서심위 이탕절무승도 원외민려 하이진언 황의상재방 소진위하제야


吾來莅爲一旬 而凡事茫無期緖 薰惱之端不而足 重以病精添加 收拾不得

오래리위일순 이범사망무기서 훈뇌지단불이족 중이병정첨가 수습불득


如是而將何 以捱度一日耶 極悚且悶 眩甚不宣

여시이장하 이애도일일야 극송차민 현심불선


壬午二月六日 從叔

임오이월육일 종숙


此札覽過於大庭也

차찰람과어대정야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뻤다. 어른의 병환은 차도가 없느냐? 멀리 있는 나의 걱정과 근심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느냐? 황(黃) 의원은 아직 옆에 있느냐? 올리는 약은 무슨 처방이냐? 나는 부임한 지 열흘이 되었으나 모든 일이 아득하고 속이 타 황망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게다가 병세가 더 나빠져 수습할 수가 없는데 이런 상태로 어찌 하루인들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겠느냐? 매우 송구스럽고 걱정된다. 어지럼증이 심하여 이만 줄인다.


1882년 2월 6일


(추신) 이 편지는 대정(大庭)에서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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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윗글은 1882년(고종 19) 2월 6일에 김병덕(金炳德, 1825년-1892년)이 사촌 동생인 김병주(金炳㴤 1827~1887)의 아들 김정균에게 쓴 편지이다. 따라서 처음 나오는 날짜 1822. 2. 6은 집필진이 착각하였다. [윗글에서 壬午二月六日은 1882년(고종 19) 2월 6일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위 편지가 쓰기 전의 김병덕은 1881(고종 18), 12월 7일 평안도 관찰사로 명받았고 그곳 부임지에 도착하여 1882년 1월 26일 쓴 편지로 판단한다. 병이 깊어지신 것 같았는데 무슨 아픔이시었을까? 아래는 김병덕이 위 편지를 쓰기 전 고종 실록에 실린 김병덕의 기록이다.


고종 18권, 18년(1881 신사 / 청 광서(光緖) 7년) 12월 7일(을축)

 

이정로(李正魯)를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이경하(李景夏)를 무위 도통사(武衛都統使)로, 김병덕(金炳德)을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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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9권, 19년(1882 임오 / 청 광서(光緖) 8년) 1월 22일(기유)

 

평안 감사(平安監司) 김병덕(金炳德)을 소견(召見)하였다. 사폐(辭陛)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