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03
44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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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김정균(金定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1
(1883.1.23)
卄日上書 伏想間己下鑑矣 伏末審日來氣體候更若何 揮度姑爲均寧 從兄勞頓之
입일상서 복상간기하감의 복말심일래기체후갱약하 휘도고위균녕 종형노돈지
餘 果無受損 并伏慕區區無任下誠 子眠食無恙 而昨參誕辰問安 仍出門外 纔到
여 과무수손 병복모구구무임하성 자면식무양 이작삼탄진문안 잉출문외 재도
慕華嶺 行謁安洞叔主 則多日勞攘 不至有損 伏庸喜祝 而卽爲詣闕納符 仍○督
모화령 행알안동숙주 칙다일로양 부지유손 복용희축 이즉위예궐납부 잉○독
辦事務耳 明再明間 當呈辭 而此意往稟承洞 則來初八公故 不得不進參 且陞資
판사무이 명재명간 당정사 이차의왕품승동 칙래초팔공고 부득부진참 차승자
未幾日 雖情勢通朝所共知 星辭有若浼浼 極涉惶悚 五六日從權潛行 還爲上來
미기일 수정세통조소공지 성사유약매매 극섭황송 오륙일종권잠행 환위상래
初八後呈辭下去 似好爲敎 故又以此意往議騎判 則亦以潛行之意爲答 勢不得己
초팔후정사하거 사호위교 고우이차의왕의기판 칙역이잠행지의위답 세불득기
如是伏計 而伊間仕進與公故無事過去之意 另誦於禮判丈耳 千福來見而下往云
여시복계 이이간사진여공고무사과거지의 령송어례판장이 천복래견이하왕운
故玆上書 不備白
고자상서 불비백
癸未正月二十三日 子 定均 上書
계미정월이십삼일 자 정균 상서
20일에 올린 편지는 그간 이미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즈음 안부는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집안은 모두 평안하며, 종형(從兄)은 과로로 피로하고 나서 건강에 손상은 입지 않으셨는지요? 그리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탈없이 잘 먹고 자고 있으며, 어제는 생신에 참석하여 문안하고 성문 밖으로 나가 모화령(慕華嶺)25)에 도착하자마자 가서 안동(安洞)26) 숙부를 뵈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힘써 일 하시고도 건강에 손상은 없으시니 기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대궐로 가서 부절(符節)을 반납하고 계속하여 독판(督辦)사무를 보았습니다. 내일 모래 사이에 사직서를 올리려 합니다. 이런 뜻을 승동(承洞)에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달 8일에는 공적인 일로 부득불 진참(進參)해야 합니다. 또한 제 형편은 온 조정이 다 아는 것이긴 하지만, 승자(陞資)한 지 며칠 안 되어 마치 더러운 것이 옷에 묻은 것처럼 성급하게 사직하자니 매우 황송합니다. 5, 6일에 임시방편으로 잠행(潛行)하고 도로 올라와 8일후에 사직서를 올리고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또한 이런 뜻을 병조판서에게도 가서 의논했더니 역시 잠행하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사정상 부득이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벼슬하고 공무를 보며 별 탈 없이 지냈다고 따로 예조판서 어른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천복(千福)이 와서 만났는데, 내려간다고 하기에 그 편에 편지를 올리며 이만 줄입니다.
1883년 1월 23일 아들 정균(定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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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모화령(慕華嶺):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고개 아래에 모화령(慕華嶺)이 있었다.
26) 안동(安洞): 조선 시대의 동명(洞名), 현재의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 부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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