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02
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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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김병덕(金炳德)이 김정균(金定均)에게 보낸 편지 2
(1823.1.16)
元朝書尙慰 伊後日氣甚不調 侍湯諸節更若何 聞有入闉之行 見差宣敎之任云
원조서상위 이후일기심불조 시탕제절갱약하 문유입인지행 견차선교지임운
賀儀己過恩資 己蒙特旨耶 侍歡尤當感祝 而竗齡躐進 其兢惧亦可想到 而遠外
하의기과은자 기몽특지야 시환우당감축 이묘령렵진 기긍구역가상도 이원외
未得卽聞 殊鬱殊鬱 顧此通政之時 年爲二十七 其早宦歷致朝著 惟徐輔國丈子
미득즉문 수울수울 고차통정지시 년위이십칠 기조환력치조저 유서보국장자
明台與此身 凡三人而己 世皆艶稱矣 令今之年紀 此此又早五年 則倍加自勉 可
명태여차신 범삼인이기 세개염칭의 영금지년기 차차우조오년 칙배가자면 가
副其實 果何以爲計乎 行期臨迫 而非但病難自力 氷雪泥濘 將不知何以致身 戒
부기실 과하이위계호 행기임박 이비단병난자력 빙설니녕 장불지하이치신 계
心自不少也 團與帶得送 須勿以品之優劣爲言 必懸此拖此 而入覲也 臨發怱擾
심자불소야 단여대득송 수물이품지우열위언 필현차타차 이입근야 임발총요
不宣
불선
癸未元月旣望 從叔
계미원월기망 종숙
설날에 보낸 편지가 아직도 위로가 되는데, 그 후 일기가 순조롭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어른 병수발 들며 어떻게 지내느냐? 도성 행차를 했으며 관찰사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의 뜻이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보다 훨씬 크다. 이미 특지(特旨)를 받았느냐? 기뻐하며 감축할 일이나, 어린 나이에 단계를 뛰어넘어 승진했으니 그 두려움 또한 상상할 수 있겠다. 내가 외직에 있어서 즉시 가서 소식을 듣지 못하니 매우 답답하다. 내가 통정(通政)이 된 것이 나이 27세 때였다. 벼슬을 빨리 시작하여 조정에 반열에 든 것은 서 보국(徐輔國), 자명(子明) 대감, 그리고 나 모두 세 명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 칭송했다. 그런데 지금 네 나이는 이것에 비교해도 또 5년이 빠르니, 더욱 스스로 힘써서 실질에 부응해야 한다. 어떻게 실천할 계획이냐? 떠날 때가 임박했는데 병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얼음과 눈으로 길이 질척질척하니 어떻게 임지로 갈지 모르겠구나. 적잖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단령과 요대를 보내니 품질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말고, 말없이 입고 들어가 임금을 뵈어라. 출발할 때가 되어 급히 쓰고, 이만 줄인다.
1882년 1월 16일 종숙(從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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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癸未元月은 1883년(고종 20) 1월이다. 집필진이 날짜를 잘 못 썼다. 김병주가 아들인 김정규에게 보낸 편지 5를 보면(1883, 1, 13) 22세에 비옥(緋玉)이 된 아들에게 지극히 영광스러우나 두려움이 앞선다고 하였다. 위 김병덕이 쓴 편지는 이보다 3일 후인데 어떤 직책을 받았을까?
위 편지를 쓸 무렵인 1883년(고종 20) 1월 10일 고종실록은 김정균이 선교관(宣敎官)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선교관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반포하는 교서를 읽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를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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