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金宗圭) 할아버지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
履慶 |
履中 |
履基 | |||
22세 |
明淳 生父 履基 |
祖淳 |
龍淳 | |||
23세 |
興根 |
應根 |
弘根 |
左根 |
元根 |
逌根 生父 祖淳 |
24세 |
炳德 |
炳始 |
炳溎 |
炳冀 |
炳地 |
炳㴤 |
25세 |
宗圭 |
容圭 |
性圭 |
用圭 |
錫圭 |
定圭 |
김종규[ 金宗圭 ]
조선 말기의 관리. 1888년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1889년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896년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초에는 직학사(直學士)로서 을미사변 등에 대한 복수와 고종의 러사아공사관체류에 대해 환어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해 연말 중추원 1등의관을 1898년 시강원(侍講院) 첨사(詹事)를 거쳐,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를 지낸 뒤 1903년 경상북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참고문헌≫ 純宗實錄
백과사전 카테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문신
출처: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92703&v=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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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는 유관 김흥근의 손자이시고 약산 김병덕의 아들입니다. 생부는 炳龍으로 족보에서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舊譜祚均 生父炳龍
字敬周 號振菴 哲宗壬戌十月十八日生乙卯文科戶曹參判壬戌九月十七日卒
○配貞夫人韓山李氏癸亥生甲戌三月十五日卒
父府使承祐祖坤在曾祖牧使羲平外祖蔭參判贈贊成金在成本光山
○墓機山間村艮坐合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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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金宗圭, 舊名 金祚均 1862~1922]는 생각보다 관력이 화려하였습니다. 간추리면 1888년(고종 25)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1889년(고종 26) 이조 참의(吏曹參議), 1896년(고종 33) 궁내부 특진관, 1897(고종 34) 3월 21일 태자궁 시강원 첨사, 이후 궁내부 특진관을 여러 번 역임하시고 1903년(고종 40) 경상북도 관찰사, 1910년(순종 3) 정이품에 서임 되었습니다.
저희 집으로 보낸 편지는 김조균 이름으로 3매 김종규 이름으로 1매가 보이는데 모두가 증조 김정규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의 돈독한 우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흥선 대원군 집권 이후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종식하고 고른 인재를 등용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도정치는 타파되었고 왕권은 강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기(高宗 재위 기간)에도 저희 안동김씨 문중 여러분과 특히 贊成公(達行)의 후예들은 계속 출사하여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었음은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바와 같습니다. 이는 인재는 계속 등용시키려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의도로 보입니다.
유관 김흥근(游觀 金興根)의 실질적인 종손이며 위 김종규의 증손자이신 김진동 씨 하고는 대종중 모임에서 2010년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노가제 김창업 쪽으로 입적되시어 양쪽을 돌보시느라고 노고가 크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한 번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때에는 의석 김응근(宜石 金應根) 종손인 김희동 형님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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