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김종규(金宗圭) 할아버지

추읍산 2011. 1. 19. 11:20

김종규(金宗圭) 할아버지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김종규[ 金宗圭 ]

 

조선 말기의 관리. 1888년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1889년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896년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초에는 직학사(直學士)로서 을미사변 등에 대한 복수와 고종의 러사아공사관체류에 대해 환어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해 연말 중추원 1등의관을 1898년 시강원(侍講院) 첨사(詹事)를 거쳐,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를 지낸 뒤 1903년 경상북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참고문헌≫ 純宗實錄


백과사전 카테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문신


출처: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92703&v=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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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는 유관 김흥근의 손자이시고 약산 김병덕의 아들입니다. 생부는 炳龍으로 족보에서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舊譜祚均 生父炳龍

字敬周 號振菴 哲宗壬戌十月十八日生乙卯文科戶曹參判壬戌九月十七日卒

○配貞夫人韓山李氏癸亥生甲戌三月十五日卒

父府使承祐祖坤在曾祖牧使羲平外祖蔭參判贈贊成金在成本光山

○墓機山間村艮坐合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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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金宗圭, 舊名 金祚均 1862~1922]는 생각보다 관력이 화려하였습니다. 간추리면 1888년(고종 25)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1889년(고종 26) 이조 참의(吏曹參議), 1896년(고종 33) 궁내부 특진관, 1897(고종 34) 3월 21일 태자궁 시강원 첨사, 이후 궁내부 특진관을 여러 번 역임하시고 1903년(고종 40) 경상북도 관찰사, 1910년(순종 3) 정이품에 서임 되었습니다.


저희 집으로 보낸 편지는 김조균 이름으로 3매 김종규 이름으로 1매가 보이는데 모두가 증조 김정규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의 돈독한 우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흥선 대원군 집권 이후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종식하고 고른 인재를 등용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도정치는 타파되었고 왕권은 강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기(高宗 재위 기간)에도 저희 안동김씨 문중 여러분과 특히 贊成公(達行)의 후예들은 계속 출사하여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었음은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바와 같습니다. 이는 인재는 계속 등용시키려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의도로 보입니다.


유관 김흥근(游觀 金興根)의 실질적인 종손이며 위 김종규의 증손자이신 김진동 씨 하고는 대종중 모임에서 2010년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노가제 김창업 쪽으로 입적되시어 양쪽을 돌보시느라고 노고가 크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한 번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때에는 의석 김응근(宜石 金應根) 종손인 김희동 형님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