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황려(黃驪)가는 도중에

추읍산 2011. 1. 23. 15:10

 

黃驪道中 황려도중


황려(黃驪)111) 가는 도중에

 

김유근(金逌根 1785~1840)

 

遍田襏襫屬端陽 편전발석속단양 밭마다 도롱이 차림, 마침 단오인데
野蔌村醪午饁忙 야속촌료오엽망 들나물 막걸리로 새참을 바삐 내가네

秧雨霏微齊吐綠 앙우비미제토록 부슬부슬 모내기 비에 일제히 신록을 토해 내고

麥風搖曳亂抽黃 맥풍요예난추황 살랑살랑 보리 바람에 어지러이 누런 이삭 돋아나네

人情多難初萌善 인정다난초맹선 사람 마음 처음에 선단(善端) 일으키기 어려운데

天意無私復降康 천의무사복강강 하늘의 뜻 사심 없어 다시 편안함 내려주시네

更願朝廷兼少事 갱원조정겸소사 다시 바라노니, 조정에도 일이 적고

屢豊之樂頌吾王 루풍지락송오왕 해마다 풍년 들어 우리 임금 칭송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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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황려(黃驪) : 경기도 여주지역의 옛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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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작자가 중년 때인 1825년경이 아닐까요? 그때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개군산면 향곡리(지금의 양평군 개군면 향리)에는 작자(김유근)의 증조부인 김달행, 조부 김이기, 생가 쪽 조부인 김이중의 묘역이 자리하였는데(김이중은 후에 이웃인 계전리로 이묘) 그곳을 찾고 농촌 모습을 살피기 위하여 마침 단오날인 음력 5월 5일(양력 6월 초순~중순) 행차 도중, 느낀 점을 글로 남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는 말이나 한강의 뱃길을 이용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오는데 본 글을 쓸 때는 말을 타고 가셨을 것입니다. 두물머리(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강을 건너시고 양근(지금의 양평) 땅을 거쳐 가는 길과 들녘에는 때마침 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강을 따라가는 그 길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듯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신록(新綠)을 토해내는 5월(음력) 단오날의 농촌 들녘은 누런 보리이삭이 출렁이고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어 산천과 들판의 푸름은 더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수리시설이 미비하였을 때이므로 농사를 하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풍년을 기약하는 듯 들판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밭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논에서는 모내기 준비에 바쁜 날이었을 것입니다. 밭마다 도롱이 차림이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흡족한 모내기 비를 기대하면서 소가 갈아놓은 밭에 두덕을 만들고 골을 내면서 각종 씨앗을 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농촌 출신이고 1950년대를 거쳐왔기에 그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도롱이는 비가 올 때 비 맞음을 피하려고 볏짚, 보릿짚, 밀짚 등으로 엮어 만든 비옷으로 상체만 가렸는데 필자도 어렸을 때 본 적이 있습니다.

 

광주리에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네들!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음식 주위에 둘러앉아 막걸리 곁들여 먹는 맛은 꿀맛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하시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셨을 황산 할아버지께서 풍년들기를 기원하면서 윗글을 쓰셨을 것이고 그때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