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1

추읍산 2011. 2. 9. 18:39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11

 

39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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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333~334

57.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1

(1884.3.5)


去月念六 伏承十一出親筆下書 伏喜先於伏慰 間又日富 春寒尙峭 伏不審氣體

거월념육 복승십일출친필하서 복희선어복위 간우일부 춘한상초 복불심기체


諸節無至過爲添損 大都均寧否 伏慕不任 緬禮不遠 間己奉出玄和矣 舊壙果無

제절무지과위첨손 대도균녕부 복모불임 면례불원 간기봉출현화의 구광과무


災害 棺上亦爲太平 而新壙將於何日開金井 風水之言 允協吉兆否 憧念不任 情

재해 관상역위태평 이신광장어하일개금정 풍수지언 윤협길조부 동념불임 정


病巧湊 未得晉去 新舊之慟 尤難形達 從子親癠以勞瘁誌致 近復越添 課日試劑

병교주 미득진거 신구지통 우난형달 종자친제이노췌지치 근복월첨 과일시제


少無減度 去逾焦迫 而孝八出場 今過一朔 雖姑貿後頉 尙在被窩 蘇完渺期 未

소무감도 거유초박 이효팔출장 금과일삭 수고무후이 상재피와 소완묘기 미


知何時起動 且近洞紅疹方大熾 亦係悶沓 將試渠所曾服歸茸湯 以爲補元 而此

지하시기동 차근동홍진방대치 역계민답 장시거소증복귀이탕 이위보원 이차


時之品茸下送 其所係緊 無以爲比 身恙之轉痼 者成間似詳達 翁著之脚祟 己極

시지품이하송 기소계긴 무이위비 신양지전고 자성간사상달 옹저지각수 기극


難宜 暗中人所不知 怪症一倍闖滋 全是風邪所由 方繼服歸脾湯 若日稍長 則一

난의 암중인소부지 괴증일배틈자 전시풍사소유 방계복귀비탕 약일초장 칙일


日再試限千貼 積勤佇效伏計 宜言曰 如是然后 或望幾分動靖云 下送朱砂 亦方

일재시한천첩 적근저효복계 의언왈 여시연후 혹망기분동정운 하송주사 역방


調服多少 使承旨備達 伏想下燭無餘 此方年前伯道所出者也 下覽伏望 姑不備

조복다소 사승지비달 복상하촉무여 차방년전백도소출자야 하람복망 고불비



甲申三月初五日 從子 性均 上書

갑신삼월초오일 종자 성균 상서


지난달 26일에 친히 써서 보내신 11일자 편지를 받고 위로가 되었고 기쁨은 그보다 더했습니다. 그사이 또 여러 날이 지났고 봄추위가 아직도 매서운 이 때에 몸이 많이 상하지나 않으셨는지 모르겠으며, 모두들 평안하신지요? 그리움은 이길 수 없습니다. 면례(緬禮)가 멀지 않아 관(棺)을 이미 꺼내었습니다. 구광(舊壙)에는 해가 없었고 관 속의 시신도 무사했습니다. 새로 옮길 무덤은 어느 날짜에 무덤을 엽니까? 풍수가는 그 날이 길일에 부합한다고 합니까? 매우 마음이 쓰이고 걱정됩니다. 마침 병이 있어 갈 수 없으니 새로운 슬픔과 묵은 슬픔을 더욱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제 아버지의 병은 과로로 인한 것인데 요즈음 병세가 더해져 날마다 약을 쓰고 있으나, 조금도 덜해지지 않으니 갈수록 더욱 애가 탑니다. 효팔(孝八)은 위급한 상황은 벗어나 이제 한 달은 넘겼습니다. 그 후에 탈은 일단 없지만 아직도 자리에 누워있으며 완치될 기약은 아득하여 언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지금 근처 동네에 홍역이 크게 창궐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그 아이가 전에 복용했던  귀용탕(歸茸湯)을 써서 원기를 보해보려 합니다. 지금 좋은 녹용을 보내주시면 비할 수 없이 긴요하게 쓰일 것입니다. 제 병이 고질병이 되어가는 것은 자성(子成)이 자세히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다리에 종기가 나 치료하기가 지극히 어려웠는데, 알아채지 못하던 사이에 고약한 증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는 나쁜 기운이 침범한 탓입니다. 지금 계속하여 귀비탕(歸脾湯)을 복용하고 있는데, 해가 조금 길어지면 하루에 두 번 복용하되 복용량은 천첩(千貼)으로 제한하고, 꾸준히 복용하여 효과를 기다려 볼 참입니다. 의원이 말하기를 ‘이렇게 한 후라야 어느 정도 가라앉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내주신 주사(朱砂)도 지금 얼마간 복용하고 있습니다. 승지(承旨)33)를 시켜 자세히 말씀드렸으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연전(年前)에 백도(伯道)가 내놓은 것입니다. 읽어 보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1884년 3월 5일 종자(從子) 성균(性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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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승지(承旨)는 김정균(金定均)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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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표를 제시하고 관련되는 분을 붉은 배경으로 하였다.

 

시조 김선평(金宣平)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1825~1892

炳始 1832~1898

炳溎 1824~1855

 

炳冀 1818~1875

 

炳地  1830~ 1888

 

炳㴤 

1827~1887

生父 弘根

25세

宗圭 1862~1922

容圭 1864~1902

性圭 1846~1896

用圭 1867~1927

 錫圭 1864~1905

 定圭 1862~1903


김성규가 숙부인 김병주에게 올린 편지이다. 김성규는 필자의 고조 김병주의 생가 장질(長姪)이다. 그때는 저의 고조 김병주가 생가와 양가를 이끌어 오셨을 것으로 판단하는데 사랑의 울타리 안에 함께 하였음은, 위 편지로 확인할 수 있어 그때를 생각하게 한다.


어느 분의 밀례를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는 연구하여야 할 과제이다. 편지를 쓰고 있는 분은 물론, 그 어머님을 비롯한 가족이 허약한 상태로 병환 중임을 알 수 있는데 이후 편지내용도 한결같아 그때의 모습이 아팝습니다.


위 편지를 쓸 때는(1884년) 김성균(金性均, 後改稱 金性圭)이 39세로 어머니 연안이씨(延安李氏 , 1826~1898)만 모셨고 아버지 김병계(金炳溎1824~1855)는 운명(殞命) 이후인데 집필진은 아버지의 병환 중이라고 쓰고 있다. 이를 해석한 원문의 親癠는 사전에서 소개하기를,


親 [ 친할 친 ]

㉠친하다(親--) ㉡가깝다 ㉢사랑하다 ㉣가까이하다 ㉤사이 좋다 ㉥손에 익다 ㉦숙달되다 ㉧어버이 ㉨친척 ㉩혼인 ㉪신부(新婦), 새색시 ㉫몸소, 친히


癠 [ 앓을 제 ]

㉠앓다 ㉡병들다 ㉢짧다 ㉣작다 ㉤자라지 아니하다


위와 같이 되어 있고 親은 어버이(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어머니다. 이런 오류는 이후 김성균의 편지, 해제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데 세심히 살피지 못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효팔(孝八)은 그때 6세인 하나뿐인 아들 국진(國鎭 1879~丁酉 )을 가리킴은 아닐까?

 

더 볼 곳: 김성규(金性圭)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