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3

추읍산 2011. 2. 25. 12:07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13

 

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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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335

 

59).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3

(1884.10.23)


梢闕上書 伏慕彌切 連伏承九月卄三今月初八兩度下書 伏慰且喜 比寒猝劇 伏

초궐상서 복모미절 연복승구월입삼금월초팔양도하서 복위차희 비한졸극 복


不審患中氣體別無添損 寢啖諸節亦復若何 伏盧不任 從子親癠尙此彌留 情私焦

불심환중기체별무첨손 침담제절역복약하 복노불임 종자친제상차미유 정사초


迫 身恙之轉益難治 己稟於承旨所所去答 伏想下燭無餘 而年將四十 仍此半廢

박 신양지전익난치 기품어승지소소거답 복상하촉무여 이년장사십 잉차반폐


去益罔措 不孝莫大 若未得差效 則慮至畢生難宜 伏未知何以則爲好乎 嫂氏間

거익망조 불효막대 약미득차효 칙려지필생난의 복미지하이칙위호호 수씨간


果順娩得男否 顒祝日以益切耳 安承兩弟之間俱擧 下曷勝聳欣 而承洞變喪 聞

과순만득남부 옹축일이익절이 안승양제지간구거 하갈승용흔 이승동변상 문


極驚愕 不忍滋筆備達 第因傳說得聞 則洛下又一大變出矣 骨戰膽捭 如不欲生

극경악 불인자필비달 제인전설득문 칙락하우일대변출의 골전담패 여불욕생


然 只憑野人得聞其說不一方 萬萬憧憧耳 多少都在承旨所所去書 故不爲疊加

연 지빙야인득문기설불일방 만만동동이 다소도재승지소소거서 고불위첩가


以此下諒伏望 姑不備白

이차하량복망 고불비백


甲申十月二十三日 從子 性均 上書

갑신십월이십삼일 종자 성균 상서


孝八則姑免現恙 是庸爲幸耳

효팔칙고면현양 시용위행이


그 동안 잠시 편지를 올리지 못해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던 차에, 9월 23일과 이달 8일 두 번에 걸쳐 쓰신 편지를 연이어 받으니 위로되고 또 기쁩니다. 최근 추위가 갑자기 심해졌는데 병환중에 건강에 별다른 손상은 없으시며 주무시고 드시는 것은 또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의 병은 아직도 이렇게 그대로이니 매우 걱정됩니다. 제 병이 더욱 치유하기 어렵게 된것은 승지(承旨)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미 말하였으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이가 이제 마흔이 되는데 이렇게 반 폐인이 되어가니 갈수록 어찌 할 바를 모르겠으며 불효(不孝)가 막심합니다. 차도를 보지 못한다면 평생 고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형수님34)은 순산하여 득남하셨습니까? 더욱 간절히 축하드릴 뿐입니다. 안동(安洞)과 승동(承洞)의 두 동생이 그간 모두 과거에 합격했으니 기쁨을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가? 그러나 승동의 상(喪)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차마 붓을 들어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전해들은 여러 소문들에 따르면 서울에서 다시 큰 변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머리를 깨고 간담을 찢는 것이 마치 살기를 바라지 않는 듯 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들의 소문에 의거한 것이고 그 말들도 일정하지 않으니 매우 궁금할 뿐입니다. 여러 이야기는 모두 승지(承旨)에게 보낸 편지에 있으니 췌언을 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아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1884년 10월 23일 종자(從子) 성균(性均) 올림


(추신) 효팔(孝八)이 일단 큰 탈은 면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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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김정균(金定均)의 아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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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제 아버지의 병이 아니고 어머니의 병입니다. 어머니는 물론 편지 쓰는 자신(김성규)도 몹시 병약함을 알 수 있습니다. 40세(실지로는 39세로 곧 그리됨을 뜻하는것 같음)면 중년에 접어들었을 터인데 왜 그렇도록 허약체질이실까? 먼저 편지에서 효팔의 아픔을 쓰고 계셨는데 차도가 있다니 다행이다. 1884년에 득남은 저의 조부 김익진이고 편지 쓴 10일 후인 1884년 11월 4일입니다. 서울에서 변괴는 무엇을 가리킴인지? 이때는 갑신정변 전인데 무슨 흉흉한 소문이 돌았을까? 안동의 김조균(김종규로 개명)은 (1879, 고종 16)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였고 승동 김용규는 1891, 별시, 병과로 급제하셨는데 아마 이때는 소과 급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서울에서의 변괴는? 갑신정변 40일 전이었는데 사회가 요동치는 근대화로 가는 길목에서 불만층의 이완이 이런 소문을 돌게 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