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2

추읍산 2011. 2. 10. 18:02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12

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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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334

58. 김성균(金性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2

(1884.8.28)


秋涼轉高 伏慕彌切 日昨伏承卄日出下書 伏審比者 氣體爲別無添損 大都均寧

추량전고 복모미절 일작복승입일출하서 복심비자 기체위별무첨손 대도균령


伏慰不任下誠 從子慈節一倍凛綴 情私焦悶 昨過晬辰 喜懼交摯 而東西落落 兩

복위불임하성 종자자절일배름철 정사초민 작과수진 희구교지 이동서락락 양


家未得團歡 伏悵何極 身恙一直如前 去益悶苦耳 南喜婚期漸近 豫切奇喜 而諸

가미득단환 복창하극 신양일직여전 거익민고이 남희혼기점근 예절기희 이제


般凡具果如何 漸次就緒乎 遠外紆菀耳 子成以其子講科事方又上京 將轉晉那中

반범구과여하 점차취서호 원외우완이 자성이기자강과사방우상경 장전진나중


云 以此下諒若何 姑不備白

운 이차하량약하 고불비백


甲申八月二十八日 從子 性均 上書

갑신팔월이십팔일 종자 성균 상서


가을의 서늘함이 더해 가는 이 때 그리움이 더욱 간절합니다. 20일에 보내주신 편지를 일전에 받고 요즈음 건강에 별로 손상은 없고 대체로 편안히 지내심을 알았습니다. 매우 위로가 됩니다. 제 어머니는 노환으로 근근히 지내시니 매우 걱정입니다. 어제 생신이어서 한 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지극했습니다. 양가(兩家)가 동서(東西)로 뿔뿔이 흩어져 단란하게 모여 기뻐할 수 없으니 너무나도 슬픕니다. 제 병은 줄곧 여전하니 갈수록 걱정일 뿐입니다. 남희(南喜)의 혼기(婚期)가 점점 다가오니 특히 기쁘실 것입니다. 혼례에 쓰일 여러 물품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착착 준비가 잘 되어갑니까? 멀리서 걱정할 뿐입니다. 자성(子成)은 그 아들이 강과(講科) 시험을 보는 일 때문에 지금 또 상경(上京)합니다. 그 쪽으로도 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1884년 8월 28일 종자(從子) 성균(性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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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편지 쓸 때는 김성균(1846~1896)이 39세이고 모친 연안이씨(1826~1898)께서는 59세이시다. 본 편지에서는 어머니를 가리켜 자(慈)이라고 하였고 7통의 편지 중 유일하다. 이미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었으므로 친(親) 또한 어머니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1884년이면 저의 고조 김병주는 어느 곳에 머무르고 계셨을까? 양가가 동서로 나뉘어 있었음을 볼 때 임오군란 때 앙덕(지금의 양평군 개군면)에 머무르신 할아버지는 서울과 시골을 오가시면서 그때는 앙덕(위 편지에서 동쪽)에 계신 것 같다. 남희는 누구일까? 글쓴이의 4촌(김병주의 따님) 자매 같았고 족보에는 출가한 댁의 남편만 올라 있어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참고로 저희 고조 김병주는 3남 5녀를 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