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오래된 부채에 글을 써서 최 군(崔君)에게 써서 보이다

추읍산 2011. 3. 20. 11:47

書舊扇 贈崔君

오래된 부채에 글을 써서 최 군(崔君)에게 보내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此扇 卽我高祖竹醉先生赴謫時所贈崔君振暹者也 君之平日行誼 高人一等 父兄長老之所稱述備矣 僕何敢更贅一言 而天道福善 已驗君門 子孫屢世 世篤孝義 今君之曾孫秉澣 齎扇而送於吾宗曰 某之先祖 自受賜之日 寶藏而世傳 至於某 不幸而無子 竊恐一朝溘先朝露 將不免遺亡而有負先祖敬附璧完 兼布腹心 僕聞而欣然曰 善哉 崔氏也 卽此 可見其不忘舊誼 不忘舊誼 乃所以不負其先也 寧不感歎 且丈夫有室 或七十八十 亦有能擧子者 今君之齒 不及耄耋 遠矣 何遽以無子爲戚 他日庭蘭晩秀 庥蔭益綿 則此扇之傳 又不足以已往爲久 而當不以僕言爲妄 崔氏勉之哉 遂書諸扇面 而復歸之


 이 부채는 바로 우리 고조(高祖)이신 죽취(竹醉) 선생1)께서 유배지로 가실 때에 최진섬(崔振暹)에게 주신 것이다. 도리에 부합하는 군의 평소 행실은 보통 사람보다 한 등급 높아 어르신들의 칭찬이 자자하니 내가 감히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겠는가마는, 하늘이 착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는 철칙이 이미 군의 집안에서 확인되었으니, 자손이 대대로 효성을 실천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데에 돈독하였다.

 지금 최진섬의 증손인 최병한(崔秉澣)이 이 부채를 우리 문중에 보내면서, “저의 선조께서 이 부채를 받은 날부터 보배로 여겨 간직하고 대대로 전했는데, 저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아침 이슬보다도 먼저 사라져2) 이 부채를 잃어버려 선조들께서 조심조심 보관하신 뜻을 필시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제 진정을 말씀드렸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기뻐, “훌륭하구나! 최씨여. 이 말을 보면 옛 정의(情誼)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정의를 잊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선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또 사나이가 아내를 두면 혹 70세, 80세가 되어서 아들을 보는 경우도 있다. 지금 그대 나이는 그런 고령(高齡)이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 벌써부터 아들이 없는 것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후일 뜰의 난초가 뒤늦게 꽃이 피고3) 복록이 더욱 이어지면 이 부채의 전수는 이미 전해온 세월이 오래되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고, 당연히 나의 말을 거짓이라 하지 못할 것이니, 최씨는 힘쓸지어다.”라고, 부채에 써서 다시 돌려준다.


 

1) 죽취(竹醉) 선생 : 죽취(1680-1722, 숙종6-경종2)는 김제겸(金濟謙)의 호이다. 김제겸은 자 필형(必亨), 시호 충민(忠愍)으로,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다. 172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아버지가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소론의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에 의해 사사되자, 울산에 유배되고 뒤에 부령(富寧)으로 이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2) 아침…사라져 : 자신이 일찍 죽음을 이른다.

 

3) 뜰의…피고 : 최병한이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