螢火賦
「형화부(螢火賦)」
김유근(金逌根 1785~1840)
병술년(1826, 순조26, 42세)
歲在丙戌 初秋之夜 獨坐西樓 時當秋夏之交 屬久雨初收 新凉滿簾 幽懷悄然 若有所思 忽見螢火起於草際 周流空中 飛旋上下 乍近乍遠 其狀不一 噫彼蟲也 借腐成形 遂含生意 自無情而適有情 亦足謂善變也耶 因憶惠陰池館夜宿舊事 三度見螢 而存者無幾 流光如水 浮生若夢 攬今懷舊 歎息彌襟 遂作螢火賦
병술년(1826) 초가을 어느 밤, 홀로 서루(西樓)에 앉아 있었다. 그 때는 여름과 가을의 환절기로, 마침 오래 내리던 비가 비로소 멎어서 서늘한 기운이 주렴(珠簾)에 가득하였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윽한 마음이 쓸쓸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반딧불이 수풀에서 나와 허공을 떠다녔다. 상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멀리 달아나기도 하여 그 모양이 각기 달랐다. 아! 저 벌레는 썩은 두엄을 빌려 형체를 이루어 마침내 생명의 의지를 품게 되었다.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되었으니 훌륭하게 변화했다고 할 만하다. 이 반딧불 때문에 혜음(惠陰)의 지관(池館)1)에서 밤에 유숙했던 옛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세 차례 반딧불을 보았는데, 인생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흐르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뜬 구름 같은 인생은 꿈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일을 가지고 옛 일을 회고하다가 가슴 속에 한숨이 가득하여 마침내 「형화부(螢火賦)」를 지었다.
攬時運之推遷兮 세월이 변해가는 것을 보니
慨余懷而增欷 내 마음 슬퍼 한숨만 느는구나
池荷寂其香謝兮 못에 연꽃 져서 그 향기 사라지고
井梧凋而葉飛 우물가 오동나무 시들어 그 잎이 날리네
彼蟋蟀之哀吟兮 저 귀뚜라미 슬피 읊조리는데
又鳴蟬以夕暉 또 매미마저 황혼에 울어대네
知霜露之無日兮 서리와 이슬 무시로 내리니
奈飄零於芳菲 향기로운 꽃 지게 한들 어쩌겠나
登西樓而悵望兮 서루(西樓)에 올라 서글피 바라보니
見宵行之流輝 소행(宵行)2)이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구나
亦一物於天地兮 이것도 천지 사이 하나의 존재인데
諒其生之甚微 참으로 그 생명 미약하기 짝이 없건만
因腐草而化形兮 썩은 풀에서 형체를 이루어3)
與太陽而敢違 감히 태양에 맞서네
出林薄之葱蒨兮 울창한 숲속 무성한 풀에서 나와
乘暮雨之霏霏 저물녘 보슬비 기운을 타고 오르네
初熒熒而自照兮 처음에는 반짝반짝 스스로 빛을 내고
又紛紛而相依 또 이리저리 서로를 의지하네
飛一一若有序兮 날 때는 하나하나 질서가 있는 듯
聚團團如成圍 모일 때는 한 덩어리 되어 포위하는 듯
乍高起而漸下兮 느닷없이 높이 날다 서서히 내려오고
忽遠逝而旋歸 갑자기 멀리 갔다 곧바로 돌아오네
旣斷續而明滅兮 끊어질 듯 이어지며 깜빡깜빡하며
始似密而終稀 처음에는 많더니 결국 다 사라졌구나
知行迹之不欺兮 행적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니
稟以聲則實非 소리 내는 성질 부여 받지 못했지
歎東山之思婦兮 「동산(東山)」시의 그리워하는 아낙을 탄식케 하고4)
感長門之幽妃 장문궁(長門宮)의 버림받은 황후를 감동시켰네5)
書窓暗而囊拾兮 글방 창문 어둑해 주머니에 담아 넣고
畵屛冷而扇揮 싸늘한 그림 병풍에 달려들어 부채로 쫒아내네
洛照途而獻忠兮 낙양(洛陽)에선 길 비추어 충성을 바쳤고6)
汴放草而煬譏 변경(汴京)에선 풀에 놓여 비난이 들끓었지
昔旅店之相見兮 예전 혜음원(惠陰院) 객관에서 보니
透薄暮之林扉 저물녘 산 속 집에 모여 들었지
時余返夫西轍兮 그 때 나는 서쪽 갔다 돌아오던 참인데
駐征驂之騑騑 그곳에 달리던 수레 멈추었지
流光倐其不淹兮 흐르는 세월 빨라 머물지 않으니
緬十載而依俙 십 년 시간 아득히 희미하구나
臨池舘而興感兮 오늘 지관(池館)에 이르러 감흥이 이는데
照此夕之簾幃 이 밤 휘장을 환히 밝히네
嗟熠燿之翾翾兮 아! 반짝반짝 반딧불 팔짝팔짝 뛰어오르니
獨先得於天機 홀로 천기(天機)7)를 먼저 얻었는데
念吾生之行休兮 가다 쉬다 바쁜 내 인생은
數存亡而無幾 운수가 다해 버렸구나
夜色凄其將闌兮 밤빛은 처량히 무르익어 가는데
零露漙而未晞 동글동글 맺힌 이슬 마르지 않네
謇彷徨而不寐兮 이리저리 헤매며 잠 못 들고
繄誰思而披衣 누구를 그리워하여 옷을 걸치나
1) 혜음(惠陰)의 지관(池館) : 혜음은 혜음원(惠陰院)으로 경기도 파주목에 있던 역원(驛院)이고, 지관은 못 가에 있는 객관(客館)이다.
3) 썩은 풀에서…이루어 : 『본초』에, “반딧불[螢]에는 몇 종류가 있다.” 했는데, 풀이 썩어 된다는 형(螢)은 속훈(俗訓)에 개똥벌레[狗屎虫]라는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편1-경전류1 「예경(禮經)-예기>
4) 「동산(東山)」시의…탄식케 하고 : 『시경(詩經)』 「빈풍(豳風)․동산」 2장의, “나는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는데, 내가 동쪽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 내렸네. 과라의 열매가 집에 뻗어 있고 쥐며느리가 방에 있으며 납거미가 문에 있네. 집 곁의 빈 땅은 사슴마당이 되었으며 반딧불이 반짝이니,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리워할 만한 것이네. [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 果臝之實 亦施于宇 伊威在室 蠨蛸在戶 町畽鹿場 熠燿宵行 不可畏也 伊可懷也]”와 3장의, “황새는 개밋둑에서 우는데 부인은 집에서 탄식하여 집안을 청소하고 개미구멍을 막으니 내 걸음이 때마침 이르렀네. [鸛鳴于垤 婦歎于室 洒埽穹窒 我征聿至]”를 원용하여 쓴 것이다.
5) 장문궁(長門宮)의…감동시켰네 : 장문궁은 한나라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았던 진 황후(陳皇后)가 버림을 받아 머물던 곳이다. 진 황후는 이곳에서 근심과 비탄에 빠져 지냈는데, 후일 이 일에 대해 많은 시인이 시를 지어 「장문원(長門怨)」이라는 악부시 제목이 생겼다. 본문의 반딧불이 감동을 주었다는 것은 악부시집(樂府詩集)42 상화가사(相和歌辭)17 「장문원」 가운데, 심전기(沈佺期)의 “달은 밝고 바람은 싸늘한데 장문궁은 비빈(妃嬪) 처소보다 뒤라네. 흰 계단에는 떨어지는 낙엽 소리 들리고 비단 휘장에는 날아다니는 반딧불 보이네. 맑은 이슬은 꿰어놓은 진주에 맺히고 떠다니는 먼지는 비취빛 병풍에 떨어지네. 님이 내 마음 살피지 못해 근심스레 총총한 별들 보며 한탄하네. [月皎風冷冷 長門次掖庭 玉階聞墜葉 羅幌見飛螢 淸露凝珠綴 流塵下翠屛 妾心君未察 愁歎劇繁星]” 라는 시를 원용한 것이다.
6) 낙양(洛陽)에선…바쳤고 : 삼국시대 원소(袁紹)가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환관들을 가차 없이 죽여 헌제(獻帝)와 진류왕(陳留王)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도망갔다. 그 때가 밤중이었는데 반딧불이 길을 비추어 맹진하(盟津河)에 이를 수 있었다. <헌제춘추(獻帝春秋)>
7) 천기(天機) : 하늘이 부여한 신령스런 본성인데, 여기서는 반딧불의 자유자재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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