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紀
또 꿈을 기록하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을축년(1805, 순조5, 21세)
余嘗夢 至一大城 城高屹然 譙堞皆如疊玉層氷 白光瀰滿 中有宮闕樓閣 屹屹相向 往來不定 遙見一大樹 童童如盖 圍可數十抱 高不見際 而異香襲人 冷氣逼骨 樹下有一高樓 樓上有一美人 方臨窓梳頭 髮白如霜 傍有一大白兎 通身玉潔 光彩皆從毫端迸出 不能正視 眺望旣久 閴若無人 俄聞珮聲璆然 笑語漸近 麗姝數十軰 皆靚服明粧 携手而至 長帔脩袂 無風自擧 翩翩不止 見余驚問曰 何人敢至此乎 余方疑愳不能答 其中一人笑曰第勿愳 君知廣寒月府乎 凡人未易至此 因指謂梳頭者曰 此卽世所謂姮娥者也 君旣入此境 可留一詩而歸 余逡巡卽應曰 層氷疊玉浩茫茫 走殿飛樓逐駭光 兎老蟾寒凡幾歲 姮娥頭髮白如霜 吟已 竟失所在而已驚悟 時乙丑十二月日也
내가 전에 꿈속에 큰 성에 갔다. 성이 산처럼 우뚝 솟아있고, 망루(望樓)와 성가퀴는 모두 옥을 겹겹이 쌓고 얼음을 층층으로 쌓은 듯 새하얀 빛이 사방에 가득 넘쳐났다. 그 가운데 궁궐과 누각이 우뚝우뚝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정처 없이 이리저리 다니다가 멀리 큰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무성하여 수레 덮개 같고, 둘레는 열 아름은 족히 되고, 높이는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특이한 향기가 나에게 스며들고 차가운 기운이 뼈에 사무쳤다. 나무 아래 큰 누각이 있고 누각 위에 미인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서리처럼 희었다. 그 옆에는 온 몸이 옥같이 깨끗한 큰 토끼 한 마리가 있었는데, 광채가 털끝마다 나와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조용하여 아무도 없는 듯했다. 잠시 뒤에 노리개 소리가 쟁그랑 울리고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화사하게 화장을 한 아름다운 여인 수십 명이 손을 잡고 다가오는데, 긴 치마와 소매가 바람도 없이 저절로 펄럭이고 너울너울 그치지 않았다. 나를 보고 놀라면서 물었다.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곳에 왔는가?” 나는 의심과 두려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웃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는 광한궁(廣寒宮)․월궁(月宮)1)을 아는가? 보통 사람은 여기에 오기 쉽지 않다.”라고 하고는 머리를 빗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분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항아(姮娥)이시다. 그대가 이미 이곳에 들어왔으니, 시 한 수를 남기고 돌아가라.” 하였다. 내가 공손히 곧바로 대답하여 “층층 얼음과 겹겹 옥이 아득히 넓고, 달리는 전각 나는 누각 빠른 시간 쫒아가네. 늙은 토끼 차가운 두꺼비 몇 살이나 먹었나, 항아 머리카락 서리같이 하얗네. [層氷疊玉浩茫茫 走殿飛樓逐駭光 兎老蟾寒凡幾歲 姮娥頭髮白如霜]”라고 시를 읊었다. 시를 읊고 나자마자 그 곳이 사라지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는 을축년(1805) 12월 어느 날이었다.
1) 광한궁(廣寒宮)․월궁(月宮) : 광한궁과 월궁은 같은 말로, 전설상 달에 있는 궁전인데 항아가 거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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