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꿈을 기록하다

추읍산 2011. 3. 20. 14:03

紀夢

꿈을 기록하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余嘗夢 躡虛而行 見波濤浩渺 一望無際 柏田森森 蔚然成林者 謂之東海之靑草湖 四顧寂然 悄無人跡 惟見白雲起於東天 往來不散 樓閣隱見於空中 而時聞鐘聲隔岸 隨風而來 悵望良久 旣而思返 行未數步 有人忽自後呼曰 來旣不易 何爲空返耶 願題一時而去 余回視卽應曰 四僊一入東溟去 靑草白雲愁渺渺 纔吟忽悟 惘然自失 旋又交睫 卽足成一絶云 隔岸鐘聲何處在 滿空樓閣隱縹緲 竟不知呼者之爲誰也


 내가 전에 꿈속에서 허공을 밟고 걸어가다가 파도치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빽빽한 잣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동해의 청초호(靑草湖)라고 했다.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며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고, 보이는 것은 다만 흰 구름이 동쪽 하늘에서 일어나 오락가락 흩어지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누각이 공중에 보일 듯 말 듯 했는데, 마침 종소리가 저 언덕 너머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슬프게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 가지 못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뒤에서 불르며 “여기에 오는 것이 쉽지 않으니, 어찌 그냥 돌아가겠는가. 시 한 수 짓고 가기를 바라노라.”라고 했다. 내가 돌아보고 곧바로 대답하여 “신선 넷1)이 동쪽 바다에 들어가 버린 뒤에는, 푸른 풀 흰 구름이 근심으로 아득하다. [四僊一入東溟去 靑草白雲愁渺渺]”라고, 시를 읊자마자 퍼뜩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시 뒤에 다시 잠들어 곧바로 두 구를 지어 한 수를 만들었다. “언덕 너머 종소리 어디에서 들려오나, 하늘 가득 누각은 아스라이 숨어있네. [隔岸鐘聲何處在 滿空樓閣隱縹緲]” 그런데 나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1) 신선 넷 : 전설 속에 내려오는 이야기로 강원도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 안에 있는 사선정(四仙亭)에서 3일 동안 놀다 떠났다는 신라의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安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45 고성 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