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제명기(題名記)」에 대해 쓰다

추읍산 2011. 3. 21. 08:32

書題名記

「제명기(題名記)」에 대해 쓰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乙未夏 主上殿下命舘閣諸臣 纂修純宗大王實錄 諸臣承命開局 刪述撰次 越四年戊戌閏四月始竣役 起辛酉止甲午 彙爲惇史 合附錄一編 共計三十五卷 嗚呼 我先王三十四年 盛德大業 治法政謨 將與天壤俱弊 賤臣何敢贅辭焉 至若摠裁以下 纂修校讐諸臣 又皆當世之極選 文學聲實 塗人耳目 雖無志載 庶可傳後 但其除拜遷移 出入無常 歲月寢遠之後 不可以聰明記而口舌憑 遂列錄姓名官職 各於其下 書以職掌 謂之題名記 非徒徵信於來許 將以識與是役也 爲榮且光焉云


 을미년(1835) 여름에 주상전하께서 관각(舘閣)의 여러 신하들에게 순종대왕실록(純宗大王實錄)1)을 편찬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신하들이 명령을 받고 실록청(實錄廳)2)을 설치하여 내용을 정리하고 손질하여 편찬하였다. 작업을 시작한지 4년째인 무술년(1838) 윤4월에야 작업을 마쳤다. 신유년(1801)에서 갑오년(1834)까지의 일을 모아 돈사(惇史)3)로 삼았고, 부록 1편을 합하여 모두 35권이 되었다.

 아! 우리 선왕께서 다스리신 34년의 세월은, 덕은 훌륭하고 사업은 위대하여 정치의 법도와 정책의 계획이 장차 천지와 함께 운명을 다 하려 했으니,4) 미천한 신하가 어찌 감히 군더더기 말을 보태겠는가. 총재(摠裁)를 비롯하여 편찬과 교정에 참여한 모든 신하들은 또한 당대의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학자로, 그 학문의 명성과 실상은 길 가는 사람 누구나 듣고 보는 바이니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후세에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직책을 받아 자리를 옮겨 한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는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입으로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명과 관직을 나열하여 기록하고, 그 아래 각각 실록을 편찬할 때 맡았던 직임을 써 두고는 제명기라 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후대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 위한 목적 이외에 이 일에 참여한 것이 영광이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1) 『순종대왕실록(純宗大王實錄)』 : 조선 제23대 왕 순조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정식 이름은 순종연덕현도경인순희문안무정헌경성효대왕실록(純宗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實錄)이다. 본문은 순조 재위 기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것이고, 부록은 왕의 행록(行錄)·시책문(諡冊文)·애책문(哀冊文)·비문(碑文)·지문(誌文)·시장(諡狀)·행장(行狀)·천릉비문(遷陵碑文)·천릉지문(遷陵誌文)을 수록한 것이다. 1835년(헌종1) 5월에 편찬을 시작해 1838년 윤4월에 완성했다. ‘순종대왕실록’이라 것은 순조의 원래 묘호(廟號)가 순종이기 때문이며, 1857년(철종8) 8월에 묘호를 순조로 추존한 까닭에 ‘순조실록’으로 개칭한 것이다.


2) 실록청(實錄廳) :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설치하는 임시 관청이다.


3) 돈사(惇史) :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선행이 있으면 이를 기록하여 돈사로 삼는다. [有善則記之爲惇史]” 했으니, 덕행이 있는 사람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4) 천지와…했으니 : 천지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정도로 훌륭하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