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그리운 어머니

남대문 하늘에 메아리친 암행어사 출두야 ~

추읍산 2011. 5. 25. 18:51

어머니 풍산홍씨께서는 필자의 외증조(瀅周)의 친형님 이신 홍철주(洪澈周 1834~1891 자: 伯泳 | 시호: 孝獻)홍철주(洪澈周 1834~1891 자: 伯泳 | 시호: 孝獻)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여주 목사 때의 투전국 이야기는 전장에서 본 바와 같습니다. 이번에는 암행어사로서의 홍철주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어머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고종 때 주로 출사하신 할아버지는 암행어사로도 명성을 날리신 분입니다.

 

고종 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흥선 대원군이 실질적인 집권자일 때입니다. 암행어사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어명이 잘 미치지 못하는 곳 구석구석을 암행하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그 임무입니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미약했던 옛날에는 그 역할이 지대하였음은 여러 이야기와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는 한편, 백성의 모습과 나라 실정을 굴절 없이 보고함으로써 정책에 반영하게 합니다. 이는 암행어사의 충심(忠心)이 불러오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어느 때일까? 아무리 흥선 대원군이 고종의 생부로서 전권을 재단한다 해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고종 초일 때일 것입니다. 어사 홍철주는 명에 의해 어느 곳을 암행하고 복명하기 위해 남대문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임금께 올려야 할 복명서를 흥선 대원군이 가로채려 한 것입니다.

 

어사 홍철주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탐지한 대원군은 심복들을 대기시켰을 것입니다. 어사가 남대문에 다다르자 대원군의 심복들은 흥선 대원군께서 보고 싶어 하니 복명서를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을 종합하면 그 자리에는 흥선 대원군까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이는 전에도 부하를 시켜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대원군의 조바심이 불러온 결과라고 추정합니다.

 

어차피 고종께 올릴 복명서는 흥선 대원군께 전달될 것이고 그 판단에 의해 정책이 집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사는 순서가 있는 법, 정보를 독점하려 한 대원군의 과욕이 어사의 보고서를 먼저 보고 싶어했겠지요?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실랑이가 남대문을 지키는 군사들과 지나치는 인파들에 의해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순간 남대문 하늘에 울려 퍼지는

 

암행어사 출두야 ~

 

승부는 이 한 마디 외침에서 끝났습니다. 무서운 놈이야! 무서운 놈 ~ 이 말을 남겼을 흥선 대원군의 표정은 어떠했을까요? 물러나시면서도 빙그레 웃으셨을 것입니다. 내 아들 고종께서 저런 신하가 있다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밝다는 전조(兆)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런 순서를 뛰어넘으려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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