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은 망우리 아저씨와 경복궁 지역을 탐방하였고 그 첫 번째가 고궁박물관이었다. 조선왕조의 숨결을 읽으며 하나 눈여겨보았으나 방대한 내용으로 시간을 별도로 내어 천천히 새겨야 하리라. 이곳에서 뜻밖에도 11대조 諱 壽恒과 10대조 諱 昌集 할아버지를 향한 숙종대왕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데 거둔 최대 수확 중 하나로 그 모습을 순서에 의해 김수항, 김창집 편으로 싣고자 한다. 또한, 효명세자의 모습도 보여 별도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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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인조 7)∼1689(숙종 15)] 편
위는 두 개의 석판으로 숙종께서 필자의 11대조 김수항에게 보낸 글이 각자 되어 있다. 아래는 해제한 글
글씨가 작아 읽는데 어려움이 따르므로 아래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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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왕 어필
영의정은 뜯어서 보십시오. 시국 정세가 매우 어렵고 논의가 분분한 요즈음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경(卿)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계속해서 참척(慘戚)을 당했다고 합니다. 고질병이 계속되고 조정에 돌아올 기약이 없으니 근심스런 생각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하리오.
생각한대 근래 대마도도에서 온 문서는 매우 마음을 놀라게 하고 그들의 의도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태평한 지 이미 오래고 인물도 많습니다. 하지만 근래 재앙으로는 전쟁의 조짐 아닌 것이 없는데 해변의 방비책은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이정도까지 나오니 나도 모르게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지금 이 문서의 허실은 비록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유비무환의 대책이 있는지 결단코 때에 맞추어서 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체부(體府)는 이전에 이미 일을 그르쳤으니 지금 다시 설치하기도 어려우며 지금 병조판서를 새로 임명하더라도 역시 일이 잘못되는 우환이 있을가 걱정됩니다.
나의 생각은 선조때의 고사(故事)에 따라 전임대신과 현직대신들 가운데서 사람을 뽑아 병조판서를 겸하게 하고 마음을 다하여 경계 임무를 처리했으면 하는데 이방법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겸임해도 괜찮다면 어느 대신이 겸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왜적에게 문서가 온 이래로 슬픔 속에서 근심이 만 갈래라서 이런 일을 가지고 그대에게 의논합니다. 마침 그대가 병환이 있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이처럼 편지를 보내어 물어 보는 것입니다. 나의 지극한 뜻을 알아서 상세히 회답함이 어떠하십니까?
추기 2019,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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