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일묘사충(一廟四忠)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숙종과 김창집

추읍산 2011. 7. 22. 17:09

 

 

필자의 10대조 김창집 [金昌集, 1648(인조 26)∼1722(경종 2)]에게 내린 숙종대왕의 글로 석판(중간 보이는 두 개의 돌판)에 각자 되었다. 감회에 젖어 관람하는 어느 여사에게 부탁하였다. 

 

 

 

숙종의 글로 돌판에 각자 하였는데 가깝게 보지 못해 사진으로는 해독이 불가하다. 그러나 아래 해제가 있다.

 

 

 

 

 

 

 

 

 

 

석판에 해제된 글로 위사진에는 작아 알아보기 어려워 아래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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肅宗大王 御筆

 

 

 

賜戶曹判書 金昌集 호조판서 김창집에게 줌

 

 

 

昨夢與先卿想見, 覺來起坐. 問夜何, 其則曉鐘己擊矣, 不勝悽然, 明燭志感

 

지난밤 꿈에서 그대와 만났습니다. 깨어나 자리에 앉아서 밤이 몇 시인가 물어보니 새벽 종소리가 이미 울리고 있었습니다. 쓸쓸한 감회를 견딜 수 없어 촛불을 밝혀 나의 감회를 적어 둡니다.

 

 

曉夢分明遇相國  새벽 꿈에서 분명히 그대를 만나

催宣法醞似平昔  술을 내리라고 재촉함이 예전 그대로이다.

昨閱遺篇多愴懷  어제 보내온 글을 읽어보니 쓸쓸한 감회가 더해

元來感應不曾忒  원래 느낀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로다

純誠體國老彌深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순수한 정성은 나이 들수록 더욱 깊어

忍說屠惟媿至今 기사(己巳: 1689)년의 일을 말하려니 지금도 부끄럽다.

每誦愛君心似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 피처럼 뜨겁다”는 경의 글을 읽을 때마다
傷神唯有涕涔淫 정신이 서글퍼서 눈물이 쏟아지네.

 

참고 : 적색 글씨는 없어 채움

옮긴이의 글

 

숙종, 경종대왕 시절에는 붕당 정치로 말미암은 당쟁이 극심하던 시기로 서인(西人)과 남인(南人) 간, 숙종 후기에는 이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려 서로 생사(生死)를 가르는 다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위 숙종의 글 기사(己巳: 1689)년의 일은 무엇을 뜻할까?

 

공부하기: 아래

(13) 일묘사충(一廟四忠)

(14) 기사환국(己巳換局)

위와 이어지는 신임사화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추기 2019, 6, 14

참고할 곳 :  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pageIndex=292&cultureSeq=257LJE&searchRelicDiv4=&searchGubun=ALL1&search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