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한양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한양여인의 향취전' 자료집에서.....
::8세 공주(公主)의 궁체솜씨::
봉건시절 상류사회 특히 왕실의 궁체(宮體)교육이
얼마나 매서웠던가는 덕온공주의 어릴 때
필적을 보면 알 수 있다.
8세때의 필적이라고 그 공주의 아들(양자)이 되는
윤용구판서(尹用求判書 : 구한말 淸官이자 名筆로 이름남)가
보증한 『구운몽』과 『요지연도(瑤池宴圖)』의 필사(筆寫)이다.
불과 국민학교 1~2학년밖에 안되는 어린이의 글씨라고는
믿어지지않게 달필이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더욱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시종일관(始終一貫)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이다.
소설책을 베꼈으니 하루 이틀에 끝낸것도 아닌데
그 글씨를 보면 하루하루 어디가 시작이며,
어디가 끝인지 분간할 수 없이 꼭 고른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금지옥엽(金枝玉葉)의 어린 공주가 원래
성격이 차분했다 하더라도
왕실 교육의 엄격성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덕온공주는 순조(純組)의 셋째따님으로
앞에서 나온 순원왕후(純元王后)는
그의 모후(母后)가 된다.
그는헌종때는 왕이 어려서 15세가 될 때까지
만 6년을, 철종은 19세때 강화에서 갓 데려온
소년이었으므로 2년을 당시 대왕대비인
김씨가 발을 드리우고 신하들과 정치를 하는 소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8년간이나 한 왕비이다.
이통에 조선조 외척정치의 대표가 되는 안동김씨
70년 세력의 표석이 다져진 셈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불행하여
외아들 세자는 22세에, 두 공주는 13세에 출가하고
얼마 안가서 요사(夭死)하였다.
또 순조는 34년간 왕위에 있었다고는 하나
세자가 승하직전까지 3년 남짓은 대리정치를 보았다.
그 이유는 중년부터 신경성 질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45세에 승하함으로써 순원왕후는
미망인이 되었는데 자녀들마저 단명하여
가장 장수한 것이 덕온공주의 23세였다.
결국 부왕(夫王)은 물론, 4남매를 다 앞세운 것이다.
이런 처지에 마지막까지 단지 하나 남은 혈육이었으니
덕온공주는 금지옥엽중에서도 더욱 금지옥엽이었다 할 것이다.
그런데 8세 어린이가 차분히 앉아 끈기있게 책을 두권이나
쪽 고르게 배껴냈다는 것은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할까
앞에서 보아온 바, 순원왕후의 봉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문장도 유창하거니와 유식하고 궁체도 내인들의 전형적인
그것과는 다른 남성같이 활달한 독특한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출처;http://cafe.daum.net/dbcalligraphy/1R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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