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한산수도(荒寒山水圖: 황량한 경치의 산수도)
(예술의 전당 전시)
김정희, 조선 19C 액자, 종이에 먹(紙本墨書), 22.7×60cm, 선문대학교 박물관
大熱送君行 무더위 속 그대를 전송하다니
我思政勞乎 심란한 이 마음을 아시겠지요
寫贈荒寒景 황량한 경치 그려 그대에게 주는 뜻
何如北風圖 「북풍도」와 비교하면 어떠한지요
水落魚橋際 수락산과 어교의 사이쯤인가
雨晴鶴 處 학이 사는 그곳에 비가 그치고
畵之不畵人 그림을 그리지만 차마 사람 못 그려
君今此中去 그대가 떠나가면 나만 홀로 남는데
我神與我情 나의 혼, 나의 마음 어디 있을까
在細苔拳石 작은 이끼 매달린 조약돌이네
出入君懷袖 그대 품속 그대 소매 드나든다면
何異數晨石 아침저녁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지방관으로 떠나는 백간(白澗)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그린 부채그림이다. 백간은 순조 때 문신인 이해연(李海淵)의 호인데, 이와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김정희의 문집에서 백간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림 속에는 김정희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져 있다. 무더위에 길 떠나는 백간이 부채에 그려진 황량한 겨울 경치를 감상하면서 더위 식히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제에는 이 부채를 소매 속에 넣어 두고 있으면 늘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말하고 있어 김정희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은 원인(元人)의 그림을 방했다고 했듯이 담백하면서 스산한 느낌이다. 김정희의 다른 작품에 비해 글씨와 그림이 모두 간결하면서 정돈되어 있다. 김정희 특유의 화법이 보이지 않으며 서체 또한 옹방강체, 유용체에 동기창체를 섞어 썼기에 20대 말이나 30대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 학예의 일치' p.280~281)
완당 장년의 산수화로 원나라 예찬倪瓚(1301~1374)과 황공망黃公望(1269~1354)의 그림을 본받아 그린 것이다. 백간이라는 분이 지방관으로 내려가는 것을 전별하면서 그린 것인데 완당의 화제 뒤를 이어 김유근이 화평을 곁들였다.
이 산수화는 스산한 필치로 古談하면서도 품격과 문기가 느껴지는 아담한 분위기가 살아있다. 화제의 글씨는 여지없이 완당 20대이 글씨인데 완당의 글 뒤에는 김유근이 “그림의 뜻은 아주 맑고 시의 기법은 청신하다(화의소쇄 시법청신 畵意瀟灑 詩法淸新)"는 평을 썼다. 완당 일파는 이런 고아한 분위기를 함께 즐기면서 서화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완당평전1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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