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문화유산

한국 목판특별전

추읍산 2012. 6. 28. 20:52

오늘은 문중 인사인 김천일 씨로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목판 전시회가 있으니 함께 가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금주에는 중국 보따리 행상에서 내려 집에 있었으므로 약속하고 11시 남부터미널역에 만났고 주유천하답사팀의 임경일씨와도 합류하였다. 예술의 전당은 처음 찾는 곳이고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였다. 먼저 한국 목판특별전을 관람하였고 다산(茶山)전도 열리고 있어 두 곳에서 역사의 현장을 읽으며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동 길안 묵계에 걸려있던 현판으로, “자신의 몸가짐은 삼가고 신중히 하여 남을 대할 때는 중후하게하라”  는 뜻이다. 보백당 김계행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유훈이다.

 

마암제는 1727년에 옥천(玉川)조덕진(1658~1737)이 세운 四未亭안에 걸려있는 편액이다. 마암은 조진도(趙進道 1724~1788)가 동문밖에 있는 지명을 따서 명명한 것이며, 또한 그의 호로 삼았다. 조진도는 영양출신으로,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조덕린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과거 급제가 취소되었다. 1788년 조부의 복관과 함께 복과되었다. 글씨는 정조 때 재상니던 번암 체제공이 썼다.

 

 

안동 오천리에 있는 김부륜(1531~1598)의 정자 편액이다. 설원은 눈의 희고 깨끗함과 달의 맑고 밝은 형상을 취해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뜻을 비유하였다. 말년에 김부륜이관직에서 물러나 정자를 짓고 장수할 곳으로 삼자, 스승인 퇴계 이황이 친필로 설월당이랑 대자를 써서 주었다. 김부륜은 유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가 향교를 증수하여 교육 진흥에 공헌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가산을 털어 항병을 지원하였다.

 

 

안동 서후면에 있는 함벽당 류경시(1666-1747)의 정자편액이다. 함백은 깨끗한 연못에 정자 주변의 자연 경관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함벽당은 원래 명종 때 절충장군 강희철이 건립한 정자로 본시 함경당 이었으나 그뒤 함벽당으로 개명하였다.

 

 

취담정

 

 

반계정은 영조 때 산림처사였던 이숙(1720~1807)이 1775년(영조 51)에 지은 별장이다. 밀양강의 맑은 물이 감도는 강 언덕 반석위에 세워져 손사익 신국변 남경희 등 마을의 명사들과 어울려 시를 읊던 곳이다. 글씨는 강세황이 썼다.

 

 

화수당은 안동 풍산 오미리에 있는 풍산김씨 동족조직 집회소의 편액이다. 화수는 꽃과 나무가 가지를 치며 무성하듯 자식이 많고 문중이 번성함을 의미한다. 당나라 위씨들이 화수회를 결성하고 화수 아래에서 친족을 모아놓고 술을 마신 고사에서 비롯되였다.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

 

 

경류정

 

 

도산서원으로 한호의 글씨이다.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편액이다. 퇴계 사후 1574년에 서원이 세워졌고 1575년에 사액되었다. 퇴계가 생전에 진리를 강론하던 곳으로 차별성이 있으며 퇴계학파의 학문적 중심역활을 하였다. 글씨는 선조의 명에 의해 한석봉이 썼으며 만력 3년(1575) 6월  일에 사액한다. 라고 부기 되어 있다. 사적 제 170호로 지정되었다.

 

 

 

 

 

 

 

 

 

 

 

 

학발시판

 

광풍제월

 

징비록은 류성용이 임진 정유 양란을 거치면서 몸소 체험한 사실의 기록이다.

 

 

 

 

 

 

 

 

 

 

 

 

위 사진 이외도 많은 목판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싣는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목판이면 기탁받고 같은 모형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목판은 또한, 인쇄술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직 현대화가 진행하지 못했던 시기 조상님의 숨결을 읽으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려는 선조님의 지혜가 엿보이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