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 황산의 흔적이

추읍산 2013. 2. 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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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초의의 관음진영보고 감탄

초묵법 절세의 명작 소재 자못 궁금

 

   
▲ 벽해타운 추사편지 도판
근자에 발굴된 〈벽해타운첩〉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첩으로, 총 21신이 실려 있는데, 〈완당문집〉〈여초의〉와 중복된 것이 13신이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편지도 8신이나 된다. 이들이 나누었던 지음의 아름다운 세계는 이것을 통해 더욱 풍요롭게 밝혀지리라. 새로 발굴된 〈벽해타운첩〉4신의 내용은 이렇다.


 

一以阻截 適從人獲見所?觀音眞影 何異見師 殊勝相也 但筆法何時到此地位歟 讚歎不能已

大?焦墨一法 爲不傳妙諦 偶因許癡發之 何料墨輪輪轉又及於師也 此像卷見爲黃山尙書所藏

尙書將欲手寫師所作讚語於其下 洵爲禪林藝圃一段佳話 恨無由拉師共見耳 近寒禪安念切

此狀嗽甚 四大之苦如是也 玆因秀奭便 略申不具 新蓂付之 己亥 臘吉

모든 소식이 끊이고 막혔다가 마침 종자(從者)로부터 (그대가) 그린 관음진영을 얻어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마는 정말 뛰어난 호상(好像)이구려. 하지만 (관음진영을 그리는)필법이 언제 이런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소. 경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대개 초묵법은(焦墨法: 진한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 전하기 쉽지 않은 오묘한 진리인데, 우연히 허소치가 이어 드러냈으니 전해지고 전해진 초묵법이 또 그대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관음상권(觀音像卷)은 황산 김유근상서께서 소장하려하십니다. 황산 대감께서 그대가 그린 관음상의 하단에 찬탄하는 글을 손수 쓰고자 하시니 초의 그대는 선림예단(禪林藝圃)의 아름다운 얘기꺼리입니다. 그대를 끌고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구려. 근래 추위에 그대의 수행은 편안하신지요. 마음만 간절합니다. 나는 기침이 심하여 사대육신의 고통 또한 견디기 힘듭니다. 여기 수석 편에 대략을 전하고, 나머지는 이만… 새 책력을 보냅니다. 1839년 12월 초 하루

 

초의의 그림 솜씨는 익히 세상에 알려졌던 듯. 추사는 초의가 초묵 필법으로 그린 관음진영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제 이런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냐”는 추사의 물음은 초의의 괄목(刮目)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이미 오래 전 초의의 일격(一格)은 다산의 문하를 드나들던 시절, 스승의 요청으로 그린 〈다산도〉와 〈백운동도〉에 묻어난다. 당시 선림예원을 대표했던 초의는 특히 불화에 능했으니 그의 관음진영이 권세가의 애호품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추사가 “이 관음상권(觀音像卷)은 황산 김유근상서께서 소장하려하십니다. 황산 대감께서 그대가 그린 관음상의 하단에 찬탄하는 글을 손수 쓰고자 하시니 초의 그대는 선림예단(禪林藝圃)의 아름다운 얘기꺼리입니다”라고 한 추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추사가 말한 황산은 누구인가. 김유근(1785~1840)이다.

 

황산은 그의 호이며, 김조순(1765~1832)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 김조순은 딸이 순조 비 책봉된 후, 세도 정치의 기틀을 마련했던 최고의 권세가였다. 황산을 상서(尙書)라 칭한 것은 그가 이조판서에 제수되었기 때문이리라. 한편 황산은 갈묵(渴墨)의 운치와 간일(簡逸)한 필치, 문기 있는 예술의 세계를 풍미했던 남종화풍의 문인화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초의의 관음진영이 절세의 명작임을 한 눈에 알았을 터. 그가 이 진영의 말미에 찬사를 쓰려했던 것은 천의무봉의 관음진영에 감응된 것은 아니었을까. 자비의 화신 관음보살, 아쉽게도 이 절세의 명작이 지금까지 세상에 그 빛을 드러낸 적은 없다. 그 소재가 자못 궁금하다. 아울러 황산의 안복을 누리게 했던 초의, 이들의 첫 만남은 언제였을까. 이들의 교유는 1830년, 초의가 상경했을 때 추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초의는 김조순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니 황산과의 인연은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이 함께 주고받은 시는 〈일지암시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편 초의의 초묵법이 소치에게 전해졌다는 추사의 증언은 실로 중요한 단서이기에 초의와 소치, 추사의 인연은 다음호에서 상세히 살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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