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의 보탑시(寶塔詩)
別
思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紗巾有淚
雁書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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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은 아래 사진을 볼 것
해제 편
이별하옵니다
그립습니다
길은 멀고
서신은 더디옵니다
생각은 님께 있으나
몸은 이 곳에 머뭅니다
비단 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향각서 종소리 들려 오는 이 밤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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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시(寶塔詩)의 전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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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 3대 시기(詩妓)인 김부용(金芙蓉)은 시명(詩名)이 운초(雲楚)로 평안도 성천 태생이다. 조실부모하여 12세 기적에 오르고 19살 때(순조) 58년 연상으로 평안도 여행중인 봉조하(奉朝賀) 김이양(金履陽 1755-1845,)대감을 사랑하여 신방을 차렸다 하니 사랑엔 국경이 없는가? 보다.
필자주 : 김이양은 함경도 관찰사(감사)를 역임한 분이지 평양감사를 근무한 적이 없다.
운초의 시는 밝으며 청량감이 있다. 김이양이 서울로 떠날때 김부용(운초)을 기적에서 빼내 정식 부실로 삼았고 훗날을 기약했다.
생이별을 한 운초는 재회의 날만 기다리며 그리움은 쌓여갔다. 몇 달이 가도 소식이 없자 원망도 많이 하였다. 멀리 있는 님을 생각하니 때로는 보고도 싶고 때론 잊지나 않았나 의심도 하고 때론 걷잡을 수 없는 이별의 슬픔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부용은 피를 토하는 듯한 애절한 시를 써서 인편으로 보냈다. 이 시가 부용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이라는 명시인데 탑 모양을 이루어 탑시라고도 한다.
서울에서 재회한 이 아름다운 사랑은 심금을 울리는데 이는 검색해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참고한 곳 : http://cafe.daum.net/peoplestoryinhistory/HXUU/43?q=%B1%E8%BA%CE%BF%EB(%D1%D1%DD%B3%E9%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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