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일묘사충(一廟四忠)

사충서원 제향

추읍산 2016. 10. 23. 19:41

어제는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사충서원에서 있었던 제향에 참석하였다. 이곳에는 신임사화에서 죽음을 당한 노론 4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체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매년 이맘때 그 정신을 기리고자 제향하고 있다. 사충서원에 대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사충서원(四忠書院)

 

---생략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에 있는 서원.

 

내용

1725년(영조 1) 노론 4대신인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를 제향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 : 후일의 )를 책봉하고 대리청정()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1727년의 정미환국()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을 받았다.

이에 따라 1868년(고종 5)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 곳이 철도용지()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충서원 [四忠書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어제 있었었던 모습을 아래 사진으로 싣고자 한다. 안동김씨에서는 서윤공파종중에서 김홍진 회장님, 사무장 필자. 김준한 씨, 김기동 씨, 김영진 씨가 참석하였는데 추가하면 초헌관으로 김재년 씨가 참석하였다. 제향 모습은 아래 사진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내경

 

외경

 

 

김창집(필자의 10대조)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

 

사충서원 묘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