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휘 상헌)께서는1626년(인조 4, 선생 57세) 성절사 겸 사은진주사(聖節兼謝恩陳奏使)로 8월에 서해를 건너 중국(明)에 갔다. 그때 평안도 철산 앞바다의 가도(椵島)를 불법 점령한 모문룡(毛文龍)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무함하므로 외교적 어려움에 처했는데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머무시는 동안[1627년, 3월(인조 5 공 58세)] 정묘호란의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오랑캐(후금)의 근원을 쳐 화근을 잘라버리기를 청하였는데 내용이 심금을 울리므로 조선에 신하가 있다고 하였다. 등주(登州)를 찾은적이 있었는데(1627년 3월) 지은 글이 있어 안내한다.
聞擊柝
딱따기를 치는 소리를 듣다
擊柝復擊柝 딱딱대다 다시 치는 딱따기 소리
夜長不得息 밤새도록 그치지를 않고 울리네
何人寒無衣 어떤 이가 날 추운데 옷이 없으며
何卒飢不食 어떤 군졸 배고픈데 밥을 못 먹나
萬家各安室 모든 이들 각자 방에 편히 쉬는데
獨向城上宿 홀로 성 위 향해 가서 머무르누나
豈是親與愛 어찌 그가 나와 친한 사람이리오
亦非相知識 역시 또한 서로 아는 이도 아니네
自然同胞義 같은 동포 생각는 맘 저절로 일어
使我心肝惻 내 가슴속 측은하단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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