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비명(碑銘)

국역 국조인물고

김광현

[金光炫]

원본글 출처	김광현의 비명(碑銘)
저자	김상헌(金尙憲)
이명	자 : 회여(晦汝)
원전서지	국조인물고 권17 경재(卿宰)

고(故) 대사헌(大司憲) 김광현(金光炫) 군(君)의 자(字)는 회여(晦汝)로서 나의 백씨(伯氏) 의정공(議政公, 김용(金容))의 제3자이다. 나이 64세에 졸(卒)하매 호서(湖西) 결성현(結城縣)의 새로 정한 산의 모향(某向) 언덕에 장사 지내고, 다음 해에 그 아들 김수인(金壽仁) 등이 그 행적(行蹟)을 모아 나에게 명(銘)을 청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형제의 아들은 아들과 같다.” 하였다. 대체로 명(銘)의 의의(意義)는 칭찬에 있고 단점(短點)은 말하지 않으며 그 덕(德)과 선행(善行) 및 훈업(勳業)을 논술(論述)하여 후세에 밝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말이 어찌 사람들에게 신임(信任)을 받겠는가? 그러나 또 일찍이 들으면 진 자금(陳子禽, 자금은 공자(孔子)의 제자 진항(陳亢)의 자(字))이 말하기를, “군자(君子)는 그 아들을 멀리한다.¹⁾”라 하였는데, 배우길 원하는 자 유독 성인(聖人)에게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위하여 서술(敍述)한다.

우리 김씨(金氏)는 신라(新羅)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하여 고려(高麗) 때에 와서 휘(諱) 선평(宣平)이 고창군(古昌郡)의 성주(城主)가 되어 군병(郡兵)을 이끌고 견훤(甄萱)을 격파함으로써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봉(封)해졌는데, 지위가 권행(權幸) 장길(張吉)보다 위였다. 지금까지 대대로 끊이지 않고 사(社)에서 제(祭)를 지내고 있으며 자손이 그대로 눌러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7백여 년 동안에 높은 벼슬로 이어오고 있다. 고조(高祖) 휘 번(璠)은 평양부 서윤(平壤府庶尹)으로 증 이조 판서(贈吏曹判書)요, 증조(曾祖) 휘 생해(生海)는 신천 군수(信川郡守)로 증 좌찬성(贈左贊成)이며, 조부 휘 극효(克孝)는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으로서 증 영의정(贈領議政)이요, 고(考) 휘 상용(尙容)은 의정부 우의정(議政府右議政)으로서 정축년(丁丑年, 1637년 인조 15년)의 난에 강화(江華)에서 순절(殉節)하였으며 그 문(門)에 충신지문(忠臣之門)이란 정려(旌閭)가 내렸다. 비(妣)는 정경 부인(貞敬夫人) 권씨(權氏)로서 영의정 권철(權轍)의 손녀요, 좌랑(佐郞) 권개(權愷)의 딸이다.

만력(萬曆) 갑신년(甲申年, 1584년 선조 17년) 9월에 군(君)이 태어나 11세에 모상(母喪)을 당하였는데, 증 의정공(贈議政公)이 이실(貳室) 장씨(張氏)에게 명하여 돌보아 기르게 하였다. 장성하자 진사(進士) 심율(沈慄) 가문(家門)에 혼인하였고, 임자년(壬子年, 1612년 광해군 4년) 가을에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시(兩試)에 연이어 입격(入格)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세상이 혼탁(混濁)해 짐으로 하여 과거(科擧)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전사(田舍)에서 배회하였는데, 계해년(癸亥年, 1623년 인조 즉위년)에 국가에 반정(反正)이 있어 빠진 인재(人才)를 찾아낼 때 이조(吏曹)에서 추천, 충청도(忠淸道)의 연원 찰방(連源察訪)에 제수(除授)하였으나 부임(赴任)하지 않았다. 문과 정시(文科庭試)에 뽑혀 곧 예문관(藝文館)에 추천되어 들어갔다가 이어 승문원(承文院)에 예속되었고, 또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에 임명되니 세상에서 말하는 한때의 극선(極選)으로서 사람들이 영예로 여겼으며, 예문관(藝文館)의 검열(檢閱)에 임명되어 사관(史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였다.

천계(天啓, 명 희종(明熹宗)의 연호) 갑자년(甲子年, 1624년 인조 2년)에 이괄(李适)이 반란(反亂)을 일으키자 임금이 공주(公州)로 행행(行幸)하면서 사관(史官)에게 일기(日記)를 옮기도록 명하였으나 사태가 급박하여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이유로 파직(罷職)이 되었다. 그 뒤 곧 서용되어 다시 대교(待敎)에 임명되었다가 봉교(奉敎)로 승진하였고, 얼마후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로 옮겼다가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 전직되었으며,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로 옮겼다. 다음 해인 을축년(乙丑年, 1625년 인조 3년)에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로 옮겼다가 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옮겼고,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에 임명하여 지제교(知製敎)를 겸하게 하였는데, 사임하자 체직되어 부교리(副校理)에 승진 임명되었다가 교체되어 군직(軍職)에 나아갔다. 또 직강(直講)에 임명되었다가 수찬(修撰)이 되었고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올라 또 교리(校理)ㆍ헌납(獻納)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임하였다. 다음 해에 5품을 거쳐 내키진 않았으나 이조(吏曹)에 들어갔는데, 이는 인망(人望)에 따른 것이다.

2년 뒤인 정묘년(丁卯年, 1627년 인조 5년)에 오랑캐의 침입 경보가 있자 강화(江華)에 임금을 호종(扈從)하였고, 돌아와서 부교리(副校理)에 임명되었다가 병조 정랑(兵曹正郞)으로 옮겼는데, 고사(故事)에 곧바로 정랑(正郞)에 임명되는 일은 드문 일로서 한때 서로 전하며 아름답게 칭송하였다. 횡성(橫城) 백성 이인거(李仁居)가 역모(逆謀)를 꾀하다가 벌을 받았는데 이때 문사랑(問事郞)으로서의 노고로 원종 공신(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고 허유(許逌)ㆍ정심(鄭沁) 등의 옥사(獄事)에 추관(推官)으로서의 노고로 친공신(親功臣)에 녹훈되었으나 언로(言路)에서 고집을 부렸다. 여러 번 교리(校理)ㆍ직강(直講)ㆍ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임명되었고, 중시(重試)에 오른 은전으로써 종부시 정(宗簿寺正)에 특진(特進)하였다가, 집의(執義)로 옮겼으며, 또 보덕(輔德)으로 옮겼다.

그리고 2년 뒤인 기사년(己巳年, 1629년 인조 7년) 정월에 암행 어사(暗行御史)로 호서(湖西)에 나아가 수령(守令)의 불법을 살폈고 돌아와서는 응교(應敎)가 되었다. 5월에 또 구황 어사(救荒御史)로 경기(京畿) 고을을 돌았는데, 이르른 곳마다 몸소 구제에 나서 제활(濟活)한 바가 자못 많았으며, 7월에 돌아와 홍문관(弘文館)에 들어갔다. 겨울에 대신(大臣)이 추천하여 사인(舍人)에 임명되었다가 집의(執義) 겸 필선(弼善)으로 옮겼는데, 반년 동안 서너번 옮겼으나 홍문관의 동벽(東壁, 응교(應敎)), 정부(政府)의 낭서(郎署)와 간원(諫垣) 사유(師儒)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겸직(兼職)은 전과 같았다.

경오년(庚午年, 1630년 인조 8년)에 목릉(穆陵, 선조능)을 개장(改葬)함에 있어 도청(都廳)의 낭관(郎官)으로서 광중(壙中)을 감독(監督)하였으며, 일을 마치자 통정 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로 승진시킬 것을 명하여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로 임명하였다가 곧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옮겼는데, 호조를 거쳐 형조(刑曹)ㆍ병조(兵曹)의 참의(參議)와 참지(參知), 예조(禮曹)의 참의, 동부승지(同副承旨),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냈고 간원(諫垣)의 장(長)을 두 번 지냈다. 인목 왕후(仁穆王后)의 상(喪)에 명정(銘旌)을 전서(篆書)하여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승진하였고 한성 우윤(漢城右尹)에 임명되어 부총관(副摠管)을 겸하였다. 다음 해 봄에 세 번째 간장(諫長, 대사간)이 되었으나 모두 곧 사임하였다. 6월에 대사헌(大司憲)에 임명되자 힘써 사퇴하며 차자(箚子)를 올려 제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한 사람의 과실을 진달하면서 함경 감사(咸鏡監司) 목장흠(睦長欽)은 일찍이 혼조(昏朝, 광해조(光海朝))에서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있을 때 서궁(西宮, 인목왕후)의 감선 절목(減膳節目)을 멋대로 행회(行會, 지시)한 죄를 논(論)하였는데, 임금이 이에 답하지 않으므로 곧 사임하여 체직(遞職)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전직(前職)에 제수되자 또 사임하였다.

갑술년(甲戌年, 1634년 인조 12년)에 다시 부제학(副提學)이 되었으나 사임하여 체직이 되었는데, 이때 원종 대왕(元宗大王) 추숭(追崇)의 예(禮)가 이루어져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모시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大臣)과 대간(臺諫)이 교대로 간쟁(諫爭)을 벌이자 임금이 몹시 화를 내어 감정을 가지고 대하였으므로, 뇌정(雷霆)과도 같은 임금의 위엄(威嚴) 아래에서 사람들은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대사간(大司諫) 유백증(兪伯曾)이 임금의 뜻을 헤아리고 대각(臺閣)이 텅 빈 틈을 타서 기회를 이용하여 논의를 정지시키자 곧 경연(經筵)의 장으로 발탁하고 이어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임명하여 신임(信任)을 표시하므로, 군(君)은 관료(館僚) 이상질(李尙質) 이시해(李時楷) 등과 같이 탄핵(彈劾)하고 아울러 헌부(憲府)에서 시비를 가리지 못한다고 논박(論駁)하였는데, 이에 임금은 엄한 교지(敎旨)를 내려 먼 변방으로 귀양 보내라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회령(會寧)에 유배(流配)되었다가 특별히 삼수(三水)로 이배(移配)되었으나 삼수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닌 곳으로 수토(水土)가 매우 좋지 않고 길은 몹시 험하여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지는 형편이어서 말을 버리고 걸었는데, 10일 안에 배소(配所)에 도착해야 하였으므로 핍박과 쓰러짐은 자못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자 모두 실색(失色)하였으나 군이 지키는 바는 변함이 없었다. 조정(朝廷)의 논의가 정해지자 대신이 다시 너그러운 처분(處分)을 청하였으나 윤허(允許)되지 않았다.

다음 해인 을해년(乙亥年, 1635년 인조 13년)에 풍재(風災)가 심하여 묘사 능침(廟社陵寢)의 큰 나무가 뽑히자 임금이 비로소 뉘우쳐 밖으로 내어쫓은 신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병자년(丙子年, 1636년 인조 14년) 6월에 서반 군직(西班軍職)에 임용되었다가 8월에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임명되었다. 겨울에 금인(金人)이 맹약(盟約)을 저버리고 많은 병사를 몰아 침입해 들어와 수일 만에 경기(京畿)로 다가오자 임금은 강화(江華)로 행행(行幸)하였고 적병은 이미 서교(西郊)에 도착하여 서둘러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해 들어갔는데, 군도 임금을 호위하여 성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보다 앞서 늙고 병든 재신(宰臣)은 묘사(廟社)의 신주(神主)를 따라 강화로 가라는 하교(下敎)가 있었으므로 의정공(議政公)이 바야흐로 풍현중(風眩症)의 고통이 있어 역시 따라 갔었는데, 강화가 적에게 함락되어 나라의 형세가 걷잡을 수 없이 되자 성문(城門)에 올라 염초(焰硝) 등 인화물(引火物)을 모아놓고는 ‘맹세코 노병(虜兵)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 하면서 불을 질러 자분(自焚)하니, 정축년(丁丑年, 1637년 인조 15년) 정월 22일이었다. 이때 대가(大駕) 역시 성을 나와 적의 군영(軍營)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군(君)은 부음(訃音)을 듣고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다가 노진(虜陣)을 헤치고 달려가 그 부근을 뒤졌으나 끝내 유체(遺體)를 찾지 못하였다. 이에 날을 가리어 남긴 의관(衣冠)만을 받들어 양주 동면(楊州東面)의 선영(先塋) 안 모향(某向)의 언덕에 헛장례를 치루고 정경 부인(貞敬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를 부장(祔葬)하니, 고사(故事)에 따른 것이다. 예관(禮官)이 치제(致祭) 할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은 유언(流言)을 받아들여 일이 명백치 않다고 의심하여 그 아룀을 무시하였는데, 근신(近臣) 및 대간(臺諫)이 실적을 구체적으로 아뢰었고, 군 형제도 상소(上疏)하여 원통함을 호소하는 한편 드디어 궤연(几筵)을 받들고 수원(水原)으로 내려갔다가 호서(湖西)로 옮겨 들어가 복제(服制)를 마치었다. 그러나 감히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홍주(洪州)의 오두촌(鰲頭村)에 우거하면서 산에 올라 고국(故國)을 바라보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조정(朝廷)에서 군이 임금을 호위하며 따른 공을 추록(追錄)하여 가의 대부(嘉義大夫)로 올리고 또 대사간(大司諫)에 임명하였으나 병을 이유로 사임하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얼마 안 되어 군의 장자가 어사(御史)에게 무고(誣告)되어 피체(被逮)되자 부득이 입경(入京)하여 사은(謝恩)하고 부자가 만났다.

이때 북사(北使)가 오게 되어 있었는데, 군이 상소하여 이르기를, “신부(臣父)의 죽음은 이 노인(虜人)들로 말미암았으니 의리상 한 하늘아래 이고 살 수 없습니다. 신이 만약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한다면 반드시 그들을 접할 일이 있을 것이니 해임을 청합니다.” 하였으나 윤허(允許)되지 않았다가 두 번째 상소에 윤허를 받았다. 조정에서 그 뜻을 알고 청주 목사(淸州牧使)로 임명하였는데, 무릇 문서에 청국 연호(淸國年號)를 사용한 것은 모두 서명(署名)하지 않았다. 고을에 부정(不正)이 있을 경우 뜻을 쏟아 시정하여 일체 법대로 시행하였으므로 부호(富豪)들이 대부분 좋아하지 아니하여 비방(誹謗)이 일었다. 그러나 군비(軍備)와 군무(軍務)를 보강하는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게으름이 없이 늘 싸움에 대비하는 자세였다. 내가 북쪽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관할(管轄)을 벗어나 파주(坡州)까지 와서 보았는데, 감사(監司)가 멋대로 관할을 벗어났다고 아뢰어 파직(罷職)시켰다.

신사년(辛巳年, 1641년 인조 19년)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가 또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임하였으며, 다음 해인 임오년(壬午年, 1642년 인조 20년) 사사로운 애척을 당하였을 때에 마침 부제학을 제수하는 명이 있어 도성(都城)에 들어가 사은(謝恩)하고 오두리(鰲頭里)로 돌아갔는데, 곧 대사간에 임명되기 세 번이었으나 역시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2년 뒤인 갑신년(甲申年, 1644년 인조 22년)에 소현 세자(昭顯世子)가 심양(瀋陽)에서 돌아오자 교외(郊外)에 나아가 맞이하였으며 세자가 다시 심양으로 들어가자 군 역시 오두리로 돌아왔다. 이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제수하는 명이 있었는데, 마침 대신(大臣)이 반역을 꾀하다가 죄를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들어왔다가 옥사(獄事)가 마무리되자 오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사임하였는데, 세자와 대군(大君)이 아주 돌아오게 되매 곧 들어가 사은(謝恩)하였다. 세자 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에 임명되어 벽제(碧蹄)로 나아가 맞이하였으며, 좀 뒤 병을 이유로 사임하고 목욕(沐浴)하겠다는 말미를 얻어 오두리(鰲頭里)로 돌아왔으나 다시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을유년(乙酉年, 1645년 인조 23년)에 세자(世子)가 훙(薨)하매 달려가다가 길에서 병을 치료하던 의원(醫員)이 무례한 짓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합계(合啓)하여 구속 신문하기를 청하였다. 두 번째 아뢰고는 곧 정지하였는데 홍문관(弘文館)에서 그 인피(引避)로 인한 처치(處置)에서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군(君)은 사은(謝恩)한 뒤에 홍문관의 실책을 논하고 또 의관을 신문치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어 인피하고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아 체직되어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옮겼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는데, 상소에 다만 갑자(甲子)라고만 쓴 까닭으로 소장(疏章)은 위에 올려지지 못하였다. 그런데 효릉(孝陵,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의 제관(祭官)으로 나아갔다가 낙상(落傷)을 당하여 복명(復命)도 못하고 가마에 떠메어 오두리로 돌아왔다. 임금이 여러 대신들을 인견(引見)하여 전일 대간(臺諫)이 의관을 구속하자고 청한 것은 잘못이라 말하는 한편 또 강가(姜家)의 아들로 사위를 삼은 사실을 묻고 이로 인하여 궁중의 일을 안다고 하였는데, 이때 자못 전하는 말들은 의관 이성인(李姓人)이 후궁(後宮)과 연결을 가져 참소하는 말이 유효(有效)하였다고 하였다. 9월에 동궁(東宮)을 새로 책봉하자 군은 호서로부터 들어와 하례하였으며 다음 해 봄에 무고 옥사(巫蠱獄事, 조소의(趙昭儀)를 저주했다는 무고 사건)가 크게 일어나 강 서인(姜庶人, 폐서인(廢庶人) 한소현 세자빈을 지칭함)은 사사(賜死)되고 그 오라비 강문명(姜文明) 형제와 그 어머니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는데, 강문명은 곧 군의 사위였다. 이에 중지(中旨)로 군에게 순천 소현 세자빈 강씨의 친가(親家) 부사(順天府使)가 제수되자 정신없이 서둘러 길을 떠났는데, 두어 달 사이에 우거지상(牛車之喪)을 곡송(哭送)하는 자들이 세 번이나 지나갔지만 온 집안이 두려워서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정해년(丁亥年, 1647년 인조 25년)에 등에 종기가 나 수일 만에 쟁반만큼 커지므로 의원(醫員)이 날카로운 칼로 창구(瘡口)를 째서 헤치자 흐르는 단독(丹毒)이 자리를 흥건히 적시어 곁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차마 바로 보지 못하였는데, 군은 얼굴빛이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온 경내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달려와 비방(秘方)과 약물(藥物)을 다투어 고하였으며, 한 노인은 찾아와 그 종기를 입으로 빨기를 청하였으니, 대체로 그 덕에 감동한 것이었다. 병이 위중하였을 때 임금이 재해를 맞아 감선(減膳)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곧 주방(廚房)의 공급을 줄이게 하는 한편 방(榜)을 내걸어 그 뜻을 표시하였는데, 7월 23일 새벽에 이르러 피를 토하고 인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쓸쓸히 서거(逝去)하였다.

군은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근실 소박하며, 밖으로 보기엔 어눌(語訥)하나 행동은 민첩하여 사물(事物)을 체득(體得)해 빠뜨림이 없었다. 일은 완급(緩急)없이 순리로 처리하였고 사람은 귀천없이 성심으로 대하였으며, 편벽된 자가 만나게 되면 그 중정(中正)을 보였고, 나약한 자가 만나게 되면 제어(制御)할 방법을 보였으며, 영화롭다 해서 그 드러남을 빛내려 아니하였고 곤경에 처한다 해서 그 지키는 바를 바꾸지 않고서, 분려하는 지조가 격렬히 솟구쳐 더는 추종하고 영합하려는 뜻이 없었으므로, 정직(正直)하고 충후(忠厚)하다는 일컬음을 들었다. 죽음에 임해서 스스로 사생(死生)의 이치를 알아 처자를 대하여 슬프고 가련한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형제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음이 한이된다.’라 하고 입에 맞는 음식을 대해서는 맛없어 하면서 ‘베어 나눌 수 없겠느냐?’고 하였으니, 우애(友愛)의 정은 이와 같이 타고난 것이었다. 평생 교유(交遊)를 좋아 아니하고 늘 고요히 앉아서 손에 책을 잡고 있었으며, 몸 밖의 일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해서(楷書)와 전서(篆書)는 또한 가법(家法)에서 나왔고 지은 시문(詩文)은 모두 볼만한 것이었다.

4남 5녀를 두었는데, 맏이는 일찍이 죽고 다음 김수인(金壽仁)은 증산 현령(甑山縣令)이요, 다음은 김수민(金壽民), 다음은 김수빈(金壽賓)이며, 맏사위는 세마(洗馬) 조석형(趙錫馨)이요, 다음은 현감(縣監) 윤운거(尹雲擧)에게, 다음은 정언(正言) 이정기(李廷夔)에게, 다음은 현감 강문명(姜文明)에게, 다음은 도사(都事) 이회(李恢)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김수인은 현감 성홍헌(成弘憲)의 딸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낳으니, 김성우(金盛遇)ㆍ김성운(金盛運)이요, 딸은 시직(侍直) 조윤석(趙胤錫)에게 출가하였고 하나는 출가하기 전이다. 김수민은 목사(牧使) 윤형각(尹衡覺)의 딸과 혼인하여 2남을 낳으니 모두 어리고, 김수빈은 정언 정인경(鄭麟卿)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석형은 3남 2녀를 낳으니 조경선(趙景善)은 일찍이 죽고 조경망(趙景望)ㆍ조경업(趙景業)은 모두 공부하는 중이며, 딸 맏이는 사인(士人) 이신현(李藎賢)에게 출가하여 1남 3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고, 다음은 참봉(參奉) 임일유(林一儒)에게 출가하여 1남을 낳았다. 윤운거는 1남을 낳으니 윤섬(尹掞)이요, 윤섬은 1남 1녀를 낳으니 모두 어리다. 이정기는 2남 4녀를 낳으니 아들은 이재흥(李再興)이요,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강문명은 2남 3녀를 낳으니 아들은 강구망(姜久望)이요,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내외 증손(曾孫)은 30여 인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을 쓴다.

우뚝한 기상 있었지만 평범하게 추종도 하였는데, 천성(天性)으로 타고난 것이야 바꿀 수가 있었겠나? 아! 그 뜻은 백 번 꺾인들 후회(後悔) 없도다. 과거나 또 현재로 볼 때에 그 누가 짝이 될 수 있겠는가? 추앙하는 백씨(伯氏)께서는 의로운 방도를 명확히 보셨는데, 대대로 쇠퇴함이 없이 영원히 방명(芳名)을 전할 것이로다. 나의 마음 나무와 같으나 나의 붓은 창(槍)과 같다네. 저승은 어둡지 않아 번개와 같은 신목(神目)이 있으리.

각주

• 1) 공자(孔子)가 그 자제를 교육시킴에 있어 문인(門人)과 다름이 없었다 하여 진항(陳亢)이 “그 자식을 멀리했다.”라 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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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김광현 [金光炫] (국역 국조인물고, 1999. 12.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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