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농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는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황구첨정(黃口簽丁) 1)과 백골징포(白骨徵布 ) 2)에 시달리다 못한 농부가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것이다. 조선 후기 농민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인데 다산은 이러한 참상을 보고 국가의 개혁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애절양(哀絶陽)
양경을 자른 것을 슬퍼하며
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도 서러워라
동헌 향해 통곡하며 하늘에 울부짓네
전장의 남편이 못 돌아옴은 있을 법한 일이지만
예부터 남자 절양(絶陽) 들어보지 못했다네
시아버지 죽어 상복을 입었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려 있다네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려도 범 같은 문지기가 버티어 섰고
이정(里正)들이 호통치며 외양간의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을 갈아 방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 피가 자리에 낭자하네
스스로 한탄하며 아이 낳은 죄로구나
출처 : 2018.12. 9일 남양주시 다산기념관에서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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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구첨정(黃口簽丁)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5h2611a
2) 백골징포(白骨徵布 ) 2)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9b0659a
다산 정약용이 1803년 자신의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목격하고 쓴 글이라 한다.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인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로 형제 친척을 잃는 슬픔 속에서 유배를 갔고 1818년(순조 18) 해배 되어 고향(오늘의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으로 돌아왔다. 백성의 고통을 목격한 그는 관리들의 나아갈 길을 밝힌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산의 글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신유박해(辛酉迫害)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0468&cid=46646&categoryId=46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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