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문곡과 영안위

정명공주 만사

추읍산 2020. 3. 28. 14:34
한국고전종합DB

문곡집 제5권 / 시(詩) 156수  

貞明公主挽            

본래부터 귀하신 공주님 / 自是王姬貴
여사의 자태 타고나셨지 / 天然女士姿
손 안의 구슬은 선조의 사랑이더니 / 掌珠宣祖愛
규범은 인목대비의 가르침이라 / 閨範大妃遺
임금께서 승하하시던 날 / 玉几攀號日
인목대비가 옆에서 간호하던 때였지 / 金墉侍護時
서궁의 십 년 일이여 / 西宮十年事
형제간의 반목에 가슴이 찢어지누나 / 心折豆萁詩
둘째 수〔其二〕
나라가 이륜에 힘입어 바르게 되었고 / 國賴彝倫正
별들이 태평한 운세 따라 돌아왔지 / 星隨泰運回
요 임금의 조정에서 규예로 시집오더니 / 虞朝嬀汭降
한나라의 왕실에 심원이 열렸지 / 漢室沁園開
선사에서 퉁소 불던 배필이었고 / 仙史吹簫匹
직녀는 비단 짜는 재주 있었지 / 天孫織錦才
이로부터 화순한 덕 갖췄음을 알았으니 / 從知和順德
저절로 길한 복록 찾아들었지요 / 自致吉祥來
셋째 수〔其三〕
장수와 부귀에다 아들 많이 두는 건 / 壽富多男子
왕가에 결코 없었던 일인데 / 天家事絶無
존귀와 영예로 다섯 조정 거쳤고 / 尊榮五朝閱
강건해서 팔순을 넘기셨지 / 康健八旬踰
예쁜 자식들 나란히 용방에 올랐고 / 令嗣齊龍榜
여러 손자들 모두가 봉황 새끼였지 / 諸孫盡鳳雛
하늘도 끝내 정해짐 있으니 / 蒼蒼終有定
선한 사람 복 받는 이치가 거짓 아니지요 / 福善理非誣
넷째 수〔其四〕
인간사 끝내 어찌 한스러운가 / 人事終何憾
남은 생애 홀로 슬퍼할 만하네 / 殘生獨自傷
어릴 때 제 머리 쓰다듬어 주셨는데 / 髫年曾撫頂
생신 때에 몇 번 축수의 잔 올렸지 / 壽節幾稱觴
성대한 모임 온통 꿈만 같으니 / 盛會渾如夢
깊은 은혜 어찌 차마 잊으리오 / 深恩可忍忘
진루에 훗날 밤 달님 떠올라도 / 秦樓他夜月
다시는 옛날처럼 당에 오를 수 없으리 / 無復舊升堂
[주-D001] 선조(宣祖)의 사랑 : 
정명공주는 선조와 인목왕후(仁穆王后)의 소생이다.
[주-D002] 승하 : 
원문의 ‘반호(攀號)’는 임금의 죽음을 가리킨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형산(荊山) 아래서 솥〔鼎〕을 다 주조하고 나서 용(龍)을 타고 승천할 적에, 신하들은 모두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용의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졌다. 이에 백성들은 그 활을 안고 울부짖었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3] 인목대비(仁穆大妃) : 
원문의 ‘금용(金墉)’은 옛 성(城)이다. 진(晉)나라 사마사(司馬師)가 임금 조방(曹芳)을 폐한 뒤 이곳으로 옮겼고, 양후(楊后)와 민회태자(愍懷太子)가 이곳에 유폐되었으며, 조왕 윤(趙王倫)이 찬탈한 뒤 혜제(惠帝)를 이곳에 거처하게 하였다. 《讀史方輿紀要 河南 洛陽縣》 여기에서는 서궁(西宮)에 유폐(幽閉)되었던 인목대비를 가리킨다.
[주-D004] 서궁(西宮)의 …… 일 : 
1613년(광해군5) 계축옥사부터 1623년(인조1) 인조반정까지 인목대비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주-D005] 형제간의 반목 : 
원문의 ‘두기시(豆萁詩)’는 조식(曺植)의 〈칠보시(七步詩)〉를 가리키는데, “콩대는 솥 밑에서 활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어대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볶아대기를 어찌 그리 급하게 하는가.〔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라고 하여, 형제끼리 서로 해치려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내용이다. 《世說新語 文學》 여기에서는 광해군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인 일을 가리킨다.
[주-D006] 규예(嬀汭) : 
규(嬀)와 예(汭)는 순(舜)이 살던 곳으로, 요(堯) 임금이 그의 두 딸을 그곳으로 보내 순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書經 虞書 堯典》 여기에서는 정명공주를 홍주원에게 시집보낸 사실을 가리킨다.
[주-D007] 심원(沁園) : 
본래 동한 명제(明帝)의 딸 심수공주(沁水公主)가 소유한 전원으로, 공주의 소유지를 일컫는다. 여기에서는 정명공주의 저택을 가리킨다.
[주-D008] 선사(仙史) : 
《열선전(列仙傳)》을 가리킨다.
[주-D009] 직녀 : 
원문의 ‘천손(天孫)’은 직녀성의 다른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정명공주를 가리킨다.
[주-D010] 용방(龍榜) : 
본래 당나라 때 육지(陸贄)가 진사시의 시관이 되어 한유(韓愈) 등 많은 명사를 뽑자, 당시 사람들이 이를 용호방(龍虎榜)이라고 치하한 데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고사를 따다가 문과를 용방(龍榜)이라고 하고, 무과를 호방이라고 하였다.
[주-D011] 진루(秦樓) :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딸 농옥(弄玉)을 위해 세운 누각으로, 공주의 누각이나 궁궐의 누각 또는 궁궐을 뜻한다.

출처 :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E&cate2=&dataGubun=최종정보&dataId=ITKC_BT_0397A_0050_010_1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