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 7

범초(範初) 절벽을 넘다

『 본 글에서 이미지 출처 : 2,000년 발행 안길정의 “관아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생활사” 上卷 표지와 앞 부분 두 곳 그리고 15~19쪽이고 끝부분 족보는 안동김씨 1982년판 임술보』 위 책「관아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생활사」에서 관련부분과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되살리며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부분적이긴 하지만,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왔다. 되살리면 어느 때인가 [역사기록을 종합해 보면 1866년(고종 3년) 일 것으로 생각한다.]? 집권한 흥선 대원군(李昰應이 1820~1898 )이 春山 [諱 弘根 1788(정조 12)∼1842(헌종 8). 高祖 諱 炳㴤의 生父)] 할아버지의 묏자리(墓所)를 빼앗으려 하였다(왜? 그래야만 했는지 근원을 듣지 못했..

남대문 하늘에 메아리친 암행어사 출두야 ~

어머니 풍산홍씨께서는 필자의 외증조(瀅周)의 친형님 이신 홍철주(洪澈周 1834~1891 자: 伯泳 | 시호: 孝獻)홍철주(洪澈周 1834~1891 자: 伯泳 | 시호: 孝獻)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여주 목사 때의 투전국 이야기는 전장에서 본 바와 같습니다. 이번에는 암행어사로서의 홍철주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어머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고종 때 주로 출사하신 할아버지는 암행어사로도 명성을 날리신 분입니다. 고종 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흥선 대원군이 실질적인 집권자일 때입니다. 암행어사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어명이 잘 미치지 못하는 곳 구석구석을 암행하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그 임무입니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미약했던 옛날에는 그 역할이 지대하였음은 여러 이야기와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고조 할아버지 소산 김병주(小山 金炳㴤)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 2021, 4, 4 첨부 people.aks.ac.kr/front/imageView/image.aks?type=TY1&imgFileName=/TY1/MN/JS2_V10/MN_JS2_V10_072.jpg&exmId=EXM_MN_6JOc_1851_012932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9]) ------------ 1851년 (辛亥 철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