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명문
김생해 가문의 참판급 인물로 김상준을 먼저 꼽는다. 김상준은 김생해 손자로서 우의정 문충공 김상용과는 동갑내기 사촌 형제지간이다. 또한 좌의정 문정공 김상헌의 사촌 형이다.김상준은 서기 1561년에 태어나 1590년 문과에 급제하여 1609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맏아들 김광욱이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를 지냈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손자가 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부윤에 올랐다. 이 때의 집안 광경이 아주 좋았다.. 사촌 동생 청음 김상헌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대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신망을 받았고, 절의가 굳세 조정과 백성들에게도 명망이 아주 높았다. 여기에 사촌 김상용이 시문과 글씨에 뛰어나고 도학으로 저명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금지옥엽 같이 귀한 목숨을 꽃잎 떨어지듯 멋지게 버렸으니 이때의 안동김씨 영광이 백두산 위에 번쩍였다.
그 다음 김광현이 있다. 선원 김상용의 둘째 아들이다. 1584년에 태어나 1623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지내고 이조참판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집안이 영의정 문곡 김수항 집안과 함께 안동김씨 가문 중에서도 명문이다. 이 두 집에 인물이 요즈음 게리라식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수북 김광현 집안에서는 우의정에 대제학을 지내고 문정의 시호를 받은 죽리 김이교가 나왔으며 그 외 인물이 많아서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건국공로 포상자가 구룡폭포의 물줄기처럼 또한 쏟아져 내린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김좌진 장군이 배출되었다. 김좌진 장군이 누군가? 일본군이 그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올라가고 당뇨 수치가 동반 상승하지 않았던가? 김복한, 김두한, 김은동, 김상진, 김동진, 김가진 같은 독립 투사들이 이 집에 석류알처럼 빼곡하다.. 갑신 정변의 주역 고균 김옥균도 이 집안에서 배출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물이 팔당댐 수문 열 듯이 쏟아졌다. 검찰총장 지내고 대법관에 오른 김익진. 그 맏아들로 문교부 차관을 지내고 서울대 대학원장이 된 김증한, 그 둘째 아들로 8선 의원 정일형의 사위가 되고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김흥한 등이 나왔다. 그리고 국회의원에 보사부장관을 지낸 김성진, 차장검사 김황진 , 도지사 김서규, 서울대 교수 김정진, 배우 김을동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다음이 김수증이다. 김생해 가문의 맏집이다. 문곡 문충공 김수항의 형이다. 1624년에 태어나 1650년 생원이 되고 성천부사를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동생 수항이 사사되자 벼슬을 버렸다. 갑술옥사 후 한성부좌윤, 공조참판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그리고 김성적이 1643년에 태어나 1684년 문과에 급제하여 공홍도 관찰사의 직을 수행했다. 또 김선행이 1716년에 태어나 1739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을 지냈다. 김응순이 1728년에 태어나 1753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에 올랐다. 김응순은 [동국문헌비고]의 편찬에 참여했다.
김방행은 1738년에 태어나 1773년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김방행은 초천 충정공 김시찬의 아들이다. 김방행은 그의 아들 둘이 모두 현달했다. 맏아들이 우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문정공 김이교이며, 둘째 아들이 이조판서를 지내고 문간의 시호가 내린 김이재다. 김방행의 손자가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리고 위에서 안동김씨 중에 명문이라 한 김광현 증손에 김시걸이 있다. 1653년 태어나 168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그 다음 김양행과 김매순이 있다. 김양행은 1715년 태어나 음보로 형조참판에 올랐으며,김매순은 1776년에 태어나 1795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냈다. 이 두 사람은 다음 학행편에서 더 다루기로 하자.
그 다음으로 김이성 문과 병조참판, 김명순 문과 이조참판, 김정균 문과장원 형조참판, 김원근 문과 이조참판, 김병조 문과 이조참판, 김연근 진사 공조참판, 김신근 문과 예조참판, 김만근 문과 예조참판, 김경진 문과 이조참판, 김병준 사마시 호조참판, 김덕근 문과 이조참판, 김영균 문과 형조참판, 김병집 문과 공조참판, 김홍규 문과 이조참판, 김재근 문과 호조참판, 김상규 문과 이조참판, 김갑균 문과 특진관, 김흥규 문과 특진관, 김승규 문과 제학, 김정규 문과 동지돈녕부사, 김종규 문과 호조참판, 김석규 문과 법부협판, 김정규 문과 이조참판, 김용규 문과 특진관이 있다.
그 다음으로 위에서 잠시 언급한 김옥균을 빼놓을 수 없다. 1851년에 태어나 1872년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을 지냈다. 오경석, 박규수에게 신학문을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문물에 눈을 떴다.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과 함께 박규수의 집에 모여 조국 근대화 방안을 토로했다. 우정국 낙성식 때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망명생활 중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사후 대제학의 벼슬이 내렸다. 시호가 충달이다. 그리고 김용진이 있다. 1878년 태어나 시강원시종관을 거쳐 가선대부로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1905년 벼슬을 버리고 서화에만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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