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庶尹公의 후예

안동김씨 11현

추읍산 2009. 7. 9. 09:09

출처 : 한국명문 

안동김씨의 자랑은 인물이 많은 데 있다. 안김은 인물이 다양하다 인물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인물 중에도 큰 학자가 많은 것이 제일의 자랑이다. 한 문중에 별과 같은 학자가 한 명만 나와도 문중의 자랑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한 학자가 안김에는 무리로 쏟아졌다.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석학들이 무리를 지워 은하수를 이루고 있다.

행성의 무리를 다 열거할 수 없다. 그 중에서 11명을 꼽아 보았다. 김창협,김창흡, 김창업, 김창집,김용겸, 김신겸, 김식겸,김원행, 김양행,김이안, 김매순 등이다. 이 안동김씨 가문의 학자의 무리를 "안김 11현"이라 부르고자 한다. 안김 11현보다 학문이 뛰어나고 학자로서 그 명성이 높았을지라도 다른 분야에서 업적이 두드러지거나 그 특성이 강하면 여기서 뺐다.

이 중에서 김창협과 김창흡은 이미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이 두 사람은 안김의 간판급 학자이다. 김창협은 1651년 태어나 장인 정관재 이단상에게 글을 배우고 나중에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 되었다.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은 도학 문장으로 세상에 크게 알려졌고 조선 유학사에 한 획을 굵게 그었다.

김창업은 김창협 김창흡과 함께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북경을 다녀온 "가재연행록"은 연행록 중에서 백미로 손꼽힌다. 그림 솜씨가 훌륭하여 그 아들 김윤겸이 조선 후기 유명한 산수 화가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포음 김창집도 형들과 함께 문장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문하에서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 같은 이들이 배출되었다.

김용겸은 경술로 천거되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경사백가는 물론 전고에 밝아 사림에 신망이 두터웠다. 김신겸은 당시 석학인 유숙기, 이봉상과 교유하며 106명의 벗들의 행적을 읊은 대서사시를 남겼다. 김식겸은 문장이 뛰어나 정조가 소동파에 비유된다 하여 이름을 식겸이라 하고 호를 동파라 부르도록 하였다.

" 행"자 돌림에는 선비가 수두륵하다. 김원행, 김양행, 김방행, 김약행, 김영행, 김순행, 김근행, 김덕행, 김제행, 김교행, 김연행, 김서행, 김정행, 김재행, 김의행, 김석행 등이다. 이 중에서도 김원행과 김양행의 이름이 아주 찬란했다.

김매순은 당대의 문장가로 여한 10대가의 일인으로 그 명성이 높았음을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 원고를 수정하여 죄송합니다. 안김 20현에서는 학자라기 보다 정객으로서 특징이 강한 인물이 있어서 안김 20현을 안김 11현으로 대폭 수정하였으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thugjong1.cafe24.com/bbs/view.php?id=list1&page=2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