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6대조 김명순(金明淳) 할아버지

추읍산 2009. 8. 16. 16:01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6대조 김명순 할아버지[1759(영조 35)~ 1810(순조 10) | 자: 대숙(大叔)]

 

저의 6대조는 세분입니다.

1, 김용순은 계통상

2, 김조순은 5대조 김유근의 生父이심으로

3, 김명순은 혈통상. 김홍근의 둘째 아들 김병주는 저의 5대조 김유근에게 입후하였습니다.


김명순은 7대조 김이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셋째 숙부인 김이경에게 입후하였습니다. 묘소는 부친인 김이경과 함께 부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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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순조(純祖) 1년 (1801) 신유(辛酉) 별시(別試) 갑과(甲科) 2위 

 

 

[인적사항]

 자: 대숙(大叔)

 생년: 기묘(己卯)1759

 합격연령: 43

 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경(京)

 

 

[이력사항] 

전력: 현감(縣監)

 

 

[가족사항] 

부 성명: 김이경(金履慶)

생부: 김이기(金履基)

조부: 김달행(金達行)

증조부: 김제겸(金濟謙)

외조부: 박성순(朴聖淳)

처부: 신광온(申光蘊)

 

 

출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의《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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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김조순과 세도정치를 비판하는 글에서 김명순 할아버지를  저희 문중 분들과 함께 근거도 없이 꾸짖는 것을 봅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후손된 입장에서 본 블로그의 직계 조상님을 소개하는 편에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김명순은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인 순조(純祖) 1년 (1801)에 별시(別試)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음을 봅니다. (과거급제 전 1795년인 정조 19년에 춘당대(春塘臺)에서 시행한 구일제(九日製)에서 경과(慶科) 회시(會試)에  응시자격을 얻은 바 있습니다.) 출사이후에도 실권이 미미한 아경(亞卿: 참판급)에 머물러 있었음은 4촌 간인 김조순의 세도의 풍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출사한 기간이 10년으로 짧고 오직 나라를 위하여 일하신 분을 세도정치라는 부정적인 낱말에 편승해서 꾸짖는 것은 아주 부당합니다. 그러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김명순의 요약본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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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김명순의 요약본

♢정조 43권 19년 8월 29일 (정미) 1번째 기사 / 구일제를 행하다.

♢순조 3권 1년 5월 9일 (갑신) 2번째 기사 / 승지 민택혁 등이 한재를 광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아뢰다 

♢순조 4권 2년 8월 15일 (계축) 1번째 기사 / 숙종 대왕·영종 대왕의 어진을 양지당에서선유전에 환안하다 

♢순조 5권 3년 8월 30일 (임진) 2번째 기사 / 김명순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다 

♢순조 6권 4년 11월 18일 (계묘) 2번째 기사 / 김명순을 이조 참의로, 이문회를 성균관대사성으로 삼다 

♢순조 10권 7년 5월 16일 (정사) 1번째 기사 / 권상신과 김명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순조 10권 7년 5월 29일 (경오) 2번째 기사 / 김명순과 조홍진을 발탁하여 아경으로 삼다 

♢순조 11권 8년 12월 14일 (을사) 2번째 기사 / 김명순·윤노동·송계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순조 12권 9년 4월 17일 (병오) 4번째 기사 / 김명순·이상황을 비변사 제조에 차임하다 

♢순조 12권 9년 5월 2일 (신유) 3번째 기사 / 도당 회권을 행하다 

♢순조 12권 9년 6월 14일 (계묘) 1번째 기사 / 차대 하여 구황하는 정사에 대하여 순문하다 

♢순조 12권 9년 8월 15일 (계묘) 4번째 기사 / 김종선·박종경 등 제신들에게 가자하고 시상하다 

♢순조 12권 9년 12월 26일 (신해) 2번째 기사 / 도목 정사를 행하다. 김명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순조 13권 10년 1월 21일 (병자) 2번째 기사 / 하직 인사를 드리지 않은 황해 감사 김명순을 체차하여 홍희신으로 대임 시키다 

♢순조 13권 10년 2월 20일 (갑진) 2번째 기사 / 김명순을 함경도 관찰사로 삼다 

♢순조 13권 10년 3월 18일 (임신) 2번째 기사 / 함경 감사 김명순을 불러 보고 본도의 환곡 폐단 및 수령 고과 등에 대해 문답하다 

♢순조 13권 10년 7월 29일 (신사) 1번째 기사 / 함경 관찰사 김명순이 졸함에 조덕윤으로 대임시키다.


위 원문보기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A%B9%80%EB%AA%85%EC%88%9C&keyword=%EA%B9%80%EB%AA%85%EC%88%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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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속에서 간추린 김명순

 

♢정조 19년(1795) 춘당대(春塘臺)에서 시행한 구일제(九日製)에서 경과(慶科) 회시(會試)에  응시자격을 얻다.

♢순조 1년: (1801) 신유(辛酉) 별시(別試) 갑과(甲科) 2위.

♢순조 3년(1803):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다.

♢순조 4년(1804): 이조 참의로.

♢순조 7년(1807): 아경(亞卿)으로 삼다.

♢순조 8년(1808): 이조 참판으로 삼다.

♢순조 10년(1810): 함경도 관찰사로 재직 중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