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6대조 할아버지 김용순(金龍淳 |字 施伯 |1754~ 1823)

추읍산 2009. 8. 16. 03:50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족보상의 金龍淳

 

♢字施伯英祖甲戌2月5日生丁酉進士工議癸未4月14日卒贈左贊成

♢配貞敬夫人豊山洪氏壬申生壬辰8月27日卒父府使配浩祖副正銓輔曾祖參判重疇外祖牧使黃本昌原

♢墓楊平郡介軍面香里山42丁坐合表孫男炳

 

 

 

6대조 할아버지 김용순(金龍淳 |字 施伯 |1754~ 1823)

 

 

 

7대조 광주목사 김이기의 첫째 아들이다. 1777년(정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여러 관직(주로 지방관)을 거쳐 만년에 잠시 공조 참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의 대하여는 어머니로부터도 전해 들은 이야기는 없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4촌 동생인 영안 부원군의 장자인 김유근으로 하여금 대통을 이었음은 당시 종가댁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하였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어디에서 태어나시고 성장하고 어떻게 생활하셨을까? 1815년(순조 15) 영안 부원군의 옥호정이 있기전 백련사가 마련되었고 그때부터는 1823년 4월 14일 운명하실 때까지 삼청동 25번지(현 서울지구 국군병원) 백련사에서 저의 5대조 황산 김유근과 함께 삶의 근거지로 하였을 것이나 주로 지방관으로 일하셔서 1821년이후 2년간 머무르셨다.

 

 

 

할아버지는 4촌 동생인 영안 부원군 김조순보다 조정(朝廷)에 먼저 출사(出仕 정조 때 부터)했고 정경(正卿: 정1, 종1, 정2품)을 하실 학덕(學德)과 식견(識見)이 있었음에도 만년에 잠시 실권 없는 공조 참의 밖에 이르지 못한 점과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은 점은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순조 대왕 보필시기가 깨끗하였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할아버지도 부원군 할아버지 못지않게 아들(황산 김유근)를 사랑하셨을 것이다. 묘는 여주군 흥천면 효지리 산 35번지에 있었는데 1983년 양평군 개군면 향리 산 42번지 선영으로 이묘하였다. 앞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 위 지기를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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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金龍淳)

 

[생원진사시] 정조(正祖) 1년(1777) ,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 22위

 

 

 

인적사항

 

자: 시백(施伯), 생년: 갑술(甲戌)1754년. 합격년령: 24.

 

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경(京)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과목: 일시(一時)

 

 

 

가족사항

 

 

성명: 김이기.  관직: 행온릉력(行溫陵令), 관직: 통훈대부(通訓大夫)

 

부모구전: 구경하(具慶下),   제: 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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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사마방목(司馬榜目>> 精神文化硏究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