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큰 사건으로 뚜렷한 기억도 10년, 20년, 50년 ---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100년, 200년 전의 조상님 모습을 구전에 의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키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느 곳 어느 분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그냥 조상님이라고만 이라고 합니다. 이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을 말해줍니다. 그런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는 저의 조상님의 모습입니다. 지금 기록해놓지 아니하면 그나마 흘러가는 세월 속에 뭍쳐버려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조순 신도비와 풍고집에는 영안 부원군께서 여주 선영(향리)에 와 계신 기록, 그리고 참의공(김용순) 할아버지 일 수도 있습니다. 조상님 할아버지는 성묘차 그리고 한식, 추석 등 1년이면 여러 차례 오셨을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1970년대, 지금은 별세하신 향리 1반의 한상준 씨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농사철의 시작을 알리는 바쁜 모내기 철, 마침 흡족한 비가 온 모양입니다. 마을 앞 들판 논에는 소가 논을 쓰래질하고 한쪽에서는 모를 찌고 그리고 늘어서서 모심는 그런 바쁜 시기에 저의 조상님이 향리 선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오셨을까? 가마를 타고 오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할머님이 동행하셨나 봅니다. 조상님 할아버지는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배를 타고 왕래하시거나 말이나 당나귀를 타고 다니셨다는 구전과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안 부원군 김조순 할아버지가 아니실까? 소탈하고 격의 없는 할아버지는 모 심는 일에 잠시나마 동참하시고 새참 때가 되어 농민들과 음식을 드시면서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할아버지의 정국 구상에 참고되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2004년경 이호제 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개군면 향리에서 계전리로 넘어가면 초입에 광주이씨 이호제씨가 대를 이어 살고 있습니다. 그곳 주위 일대는 광주이씨 선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도 전해오는 이야기를 부친에게서 들은 것이겠지요. 그때는 당나귀가 저희 가문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었던것 같습니다. 어느 할아버지일까요? 조상님 할아버지 행차가 이호제씨 조상님 할아버지 집앞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길도 이호제씨 조상님 땅이었나 봅니다. 행차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호제씨 조상님 할아버지는 행차가 집 앞에 오자 길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이호제씨 조상님은 여기는 우리 땅이니 못 지나간다고 양팔을 벌리고 시위하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소년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누구냐?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 어린 소년을 기억하셨을 것입니다. 이 짤막한 일화는 이호제씨가 그분 조상님 할아버지의 담대함을 자랑하고자 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호제 가문과 저희가문의 세교를 통한 유대는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아름답게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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