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새벽에 서울로 떠나면서 공연히 율시(律詩) 한 수를 지어 화영(華營)의 여

추읍산 2009. 11. 16. 15:23

曉發京行 漫賦一律 示營中諸人  효발경행만부일률시영중제인


새벽에 서울로 떠나면서 공연히 율시(律詩) 한 수를 지어 화영(華營)의 여러사람들에게 보이다.

김유근(金根 1785~1840)

 

來時殘臘雪漫天   래시잔랍설만천   올 때는 섣달이라 하늘에 눈발이 날렸는데

春日東歸意浩然   춘일동기의호연    봄날 고향으로 가니 마음이 스스럼이 없구나

素操何曾留犢子   소조하증유독자   검소한 절조로 언제 송아지 남긴 적 있었던가6)

仁聲多愧設蒲鞭    인성다괴설포편   부들 채찍 사용한 어진 명성7)에 부끄럽구나

 

斯民足與爲三代   사민족여위삼대    이곳 백성은 더불어 삼대(삼대)의 백성8) 될 만하니

易地皆同有後賢   역지개동유후현   내가 떠나도 뒤 이어 어진 관리 올 것일세

寄語諸君須努力   기어제군수력   부탁하노니, 자네들 모름지기 노력하게나

如今從事己經年   여금종사기경년   지금 일 맡은 지 이미 일 년 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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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제....있었던가 : 벼슬아치의 청렴함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 수춘 영(壽春令) 시묘(時苗)가 젊어서부터 매우 청렴해서 수춘 영으로 부임할 때 허름한 수레에 누런 암소를 멍에 하여 타고 갔다. 1년 남짓 벼슬살이하는 동안에 그 암소가 송아지 한 마리를 낳자 이임 (離任)할 때 그 송아지를 그곳에 남겨 두면서 주부(主簿)에게, "내가 올 때는 본래 이 송아지가 없었으니, 이 송아지는 회남(淮南)에서 낳은 것이다." 했다. <삼국지(三國志)23 "위서(魏書)23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裵傳)" 상림(常林) 조항 배송지(裵松之) 주(注)>


7) 부들 채찍...어진 명성 : 후한(後漢)의 유관(劉寬)이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관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부들 채찍을 써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 <"후한서(後漢書)"25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 유관조항>


8) 삼대(三代)의 백성 : 삼대는 하(夏). 은(殷). 주(周) 세 시대로 , 태평성대를 구가한 이상적인 시대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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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1827년(순조 27) 수원 유수로 임명되어 10개월의 공무를 마치고 1828년 3월 10일 전후한 어느 날  귀경길에 올랐다. (김유근은 1828년 3월 11일 판의금 부사 직책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체직되고 4월 17일 이조판서로 되었다.) 수원 유수로 명받은 날이 1827년 6월 10일인데 곧 겨울이 왔고 눈 내린 정경은 취임 이후인데 올 때 눈이 온 것으로 적고 있다. 아마도 차일피일 부임이 늦었는가 보다. 효명세자로부터 영서를 받음은 동년 9월 15일임을 유의한다. 그때도 이 취임식이 있었을 것이다. 같이 치렀는지 따로 거행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임을 명받아 서울로 떠나면서 그곳 관리들에게 시 한 수를 남겼다. 그 간 노고의 감사함을 전하면서 각자 맡은 바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여 새로 부임하는 수원 유수를 성심으로 보필하여 그곳 백성에게 선정을 펼쳐 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