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나주(羅州)로 좌천되어 가는 형조 판서 경진(景進)의 행차에 부치다

추읍산 2009. 11. 26. 00:05

寄景進尙書羅州謫補之行 기경진상서나주적보지행


나주(羅州)로 좌천되어 가는 형조 판서 경진(景進)32)의 행차에 부치다

 

김유근(金根 1785~1840)


挑盡寒燈夜向深  도진한등야향심   차가운 등불 돋우니 밤은 깊어 가는데

爲誰不寐獨沈吟  위수불매독침금   누구를 위해 잠 못 들고 홀로 끙끙대나

故人去國天涯遠  고인거국천애원   벗이 서울 떠나니 하늘 끝은 아득하고

病客登樓雪意侵  병객등루설의침   병든 나그네 누각에 오르니 눈이 쏟아지려 하네

 

末路粉紜同塞馬  말로분운동색마   어지러운 말년은 새옹지마(塞翁之馬) 같고

餘生把玩媿籠禽  여생파완괴롱금   남은 인생 흘러가는데 조롱 속 새 신세 부끄럽네

存亡離合多時限  존망이합다시한   죽고 살고 만나고 헤어짐에 한스러움만 많아

白首耶堪歲暮心  백수야감세모심   흰 머리로 한 해 저무는 마음 어찌 견딜까


漫空雨雪歲華深  만공우설세화심   넓은 하늘에 눈 내리고 한 해는 저물어 가는데

一夜相思費苦吟  일야상사비고음   밤새도록 그대 그리워 괴롭게 신음하네

滿地關河魂夢斷  만지관하혼몽단    겹겹 관산(關山)과 하천(河川)에 꿈마저 끊이고

盈庭鶩簿書侵  영정안목부서침   관리들 가득한 관청에 공문서 쌓여가네

 

擬人堪笑徒尋夢  의인감소도심몽    우습구나, 어리석은 나는 꿈에서만 찾을 뿐

君子何曾詭獲禽  군자하증괴획금    군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공적 세운 적 있던가

聞道妙香多法侶  문도묘향다법려   묘향(妙香)에 훌륭한 승려 많다 하니

休將閒事枉嬰心  휴장한사왕영심   번잡한 일로 마음 끓이지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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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나주(羅州)로,,,,경진(景進) : 경진은 이지연(李止淵), 1777~1841, 정조1~헌종7)의 자(字)이다. 그는 호 희곡(希谷)이고 , 동지의금부사 명중(明中)의 손자이고 의열(義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홍억(洪檍)의 딸이다. 순조30년 9월 18일에, "전후(前後)하여 누명을 씻도록 한 것과 위로하며 힘쓰게 한 것이 자상하고 곡진하게 남김이 없이 하였다 말할 만하다. 그런데 끝까지 나오기를 꺼리니 이밖에 과연 말할 만한 어떠한 정상과 형세가 있겠으며, 또한 어떠한 것이 그의 마음에 맞는 것인가를 모르겠으므로 너무나 놀랍다. 형조 판서 이지연을 나주 목사로 좌천시키라." 하교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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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김유근이, 벗 이지연이 나주 목사로 좌천되어 가는 것을 위로하며 지은 시다. 그러면 이지연은 누구인가? 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옮긴다.


이지연[ 李止淵 ]

1777(정조 1)∼1841(헌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진(景進), 호는 희곡(希谷).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 여(廣平大君璵)의 후손이며, 현응(顯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명중(明中)이고, 아버지는 공조참의 의열(義悅)이며, 어머니는 판중추부사 홍억(洪憶)의 딸이다.

 

1805년(순조 5) 진사가 되고,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06년에 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보직되었다. 1808년 병조좌랑에 이어 지평, 이듬 해 예조참판을 거쳐 1823년 공시당상(貢市堂上)·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지방 수령으로 민폐를 없애기 위해 전부(田賦)를 전(錢)으로 대신할 것, 그리고 호적의 법규 개정과 공염(公鹽)의 밀거래 단속 등을 청하였다.

 

1827년 한성판윤·평시서제조(平市署提調)·예조판서·광주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834년 호조판서가 되어 공인(貢人) 방납의 폐단을 바로잡았다. 1837년(헌종 3)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실록청의 총재관이 되어 ≪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대비(趙大妃)의 측근자로서 1839년에 사교 금지를 주장해 앵베르(Imbert,L.M.J.)·모방(Maubant,P.)·샤스탕(Chastan,J.) 등 프랑스 신부를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을 학살한 기해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1840년 대사간 이재학(李在鶴), 대사헌 이의준(李義準) 등이 정권을 마음대로 했다고 탄핵해 함경북도 명천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용모가 뛰어나고 마음이 곧고 신의가 있었으며, 뜻이 깊고 생각이 원대했다 한다. 저서로 ≪희곡유고≫와 편서로 ≪장의공자손보 章懿公子孫譜≫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참고문헌≫ 憲宗實錄

≪참고문헌≫ 國朝榜目

≪참고문헌≫ 司馬榜目

≪참고문헌≫ 經山集

≪참고문헌≫ 天主敎迫害(崔奭祐, 한국사 15, 국사편찬위원회, 1981)

 

백과사전 카테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문신

 

출처 :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75275&v=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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